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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해외 트레킹 | 로리이마 테푸이(Roraima Tepuy)] 천국을 트레킹하다! ‘신의 탁자’라 불리는 신비로운 바위산

글·사진 민미정
  • 입력 2018.02.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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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모양의 바위산, 베네수엘라 로라이마 테푸이(2,810m) 트레킹

나는 항상 로라이마 사진을 보며, 천국 같은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꿈을 꿨다. 현실에서 그 자리에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상해주었다.
나는 항상 로라이마 사진을 보며, 천국 같은 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꿈을 꿨다. 현실에서 그 자리에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상해주었다.

우연히 로라이마 테푸이Roraima Tepuy 사진을 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너무도 강렬한 바위산의 풍경이었다. 신의 탁자라 불리는 로라이마 테푸이는 거대한 삼각형 바위가 수 백 미터의 절벽을 이루며 융기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절벽 끝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경치를 감상하는 상상을 했다. 세계여행을 꿈꾸고 있던 나였기에, 당연히 로라이마는 남미 산행 리스트 1순위였다.

2017년 봄, 마침내 나는 그곳에 앉아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하염없이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로라이마 테푸이 트레킹의 시작은 쿠마라카파이Kumarakapay마을에서였다.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한 마을엔 로라이마와 인접한 브라질에서 온 사이클러들의 축제로 시끌벅적했다. 내일부터 이곳을 출발해 로라이마 테푸이의 첫 번째 캠프사이트인 톡캠프Tok Camp를 왕복하는 100km의 경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밀림 같은 곳을 지나야 한다. 밀림을 지나 땀에 흠뻑 젖을 때쯤 시야가 열리며 나타나는 멋진 평원.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으로 가기 위해선 밀림 같은 곳을 지나야 한다. 밀림을 지나 땀에 흠뻑 젖을 때쯤 시야가 열리며 나타나는 멋진 평원.

덕분에 노지에서의 캠핑이 덜 무서웠지만, 밤늦게 이어진 그들의 파티에 쉽사리 잠 들 수 없었다.

하루에 25km를 걸어야 하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사이클러들도 나에게 “살룻salud(화이팅)”을 외치며 응원해 준다. “그라시아스Gracias(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30분쯤 걸었을까? 오프로드 차 한대가 멈춰서더니, 나에게 목적지인 파라이테푸이ParaiTepuy마을까지 1만 볼리바르(약 3,000원)를 주면 태워 주겠다고 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갖고 있는 돈이 얼마 없어 거절했다. 그런데 저만치 가던 차가 멈춰 섰고, 빨리 오라며 나에게 손짓한다.

로라이마 정상 부근의 지정된 야영터를 호텔이라 부른다. 
호텔 우노에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로라이마 정상 부근의 지정된 야영터를 호텔이라 부른다. 호텔 우노에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운전자인 막시모Maximo는 여행사를 운영하는데 트레킹을 마친 손님을 픽업하러 가는 중이라며 무료로 태워주었다.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걸어야 할 길을 2시간 만에 도착했다. 파라이테푸이마을에 도착하자 그는 가이드 헨리Henry를 소개해 줬고, 비용 흥정까지 도와주었다.

모든 장비와 음식은 내가 들고 가는 대신, 길 안내와 변기(암석으로 이뤄진 로라이마 테푸이에서는 변을 고체화시켜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를 책임져 주는 조건을 달았다.

더불어 꿈에 그리던 로라이마를 느긋하게 감상하기 위해 보통 4박5일 일정인 트레킹 스케줄을 6박7일로 하되, 가능하다면 하루에 이틀치 거리를 걸어 내가 원하는 캠핑 장소에서 더 머무는 조건으로 70달러에 합의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로라이마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베이스캠프에서 로라이마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일주일간의 트레킹 일정 첫째 날, 신고서 작성 후 로라이마테푸이의 쌍둥이 쿠케난 테푸이Kukenan Tepuy를 감상하며 트레킹을 시작했다. 길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단조로워 지루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더위와 갈증이었다. 가는 내내 냇물이 있어 물을 정화할 휴대용 필터만 있으면 식수걱정은 없었다. 첫날은 보통 톡캠프(1,050m)에서 묵지만, 컨디션이 좋아 헨리의 동의를 얻어 베이스캠프Base Camp(1,870m)에서 첫 캠핑을 하기로 했다. 덕분에 경치가 멋있는 정상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둘째 날, 캠프의 다른 외국인 팀들이 일어나기 전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베이스캠프에서 호텔Hotel(정상부의 캠프사이트를 호텔이라 부른다)까지는 약 4.5km. 괴나리봇짐마냥 짐이 가벼운 다른 팀에게 가장 좋은 야영 터인 호텔우노Hotel Uno를 뺏기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중간쯤 도착했을 때, 본인 키만큼 큰 짐을 메고 있는 포터를 만났다. 그에 비해 나의 가이드인 헨리는 내 배낭보다 훨씬 작은 짐에 변기 뚜껑만 메었을 뿐이다. 가이드 비용이 저렴한 대신 짐은 주객이 바뀐 셈이다.

로라이마 절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을 밟기 전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고 있다.
로라이마 절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을 밟기 전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고 있다.

정상(2,810m)에 올라선 순간, 로라이마의 멋진 풍경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천국이 바로 여긴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금까지의 수고를 한 번에 보답해 주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멋진 뷰의 호텔에 텐트 칠 생각에 들뜬 것도 잠시, 그곳에는 이미 다른 팀이 오늘 하산하는 팀의 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의 다른 팀들은 텐트 담당 스태프를 미리 올려 보내놓고, 여유를 부린 건데, 순진하게도 우리는 아침잠을 설치며 헛고생을 한 것이다.

그래도 나에겐 저들보다 여유로운 일정이 있으니, 다음날 새벽같이 이곳을 점령하기로 했다. 두 번째 명당자리로 이동했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무런 경치가 없는 여관급 동굴에 텐트를 쳤다. 안개가 껴 한치 앞을 보기 힘든 날씨라 그나마 위안이다.

사이트를 구축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로라이마의 최고봉 마베릭스톤Maverick Stone(자동차 모양이라 일명 The Car라고도 불린다)에 올랐다. 꿈에 그리던 그곳의 끄트머리에 바람을 맞으며 앉는다. 그랜드 사바나GRAND SABANA의 광활한 무대 위에서 구름이 춤을 추듯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크리스털 보석이 땅에 깔린 계곡

트레킹 초반 로라이마 가는 길. 
쿠케난 테푸이(왼쪽)와 로라이마 테푸이를 바라보며 걷는다. 발은 지루하지만 
눈은 즐거운 길이다.
트레킹 초반 로라이마 가는 길. 쿠케난 테푸이(왼쪽)와 로라이마 테푸이를 바라보며 걷는다. 발은 지루하지만 눈은 즐거운 길이다.

셋째 날, 눈 뜨자마자 재빠르게 짐을 꾸려 호텔 스위트룸(경치가 가장 좋은 야영 터)으로 향했다. 앞 팀의 철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틈을 타 마베릭 스톤에 다시 올랐다. 어제의 해질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절벽 끝에 앉아 바람을 느낀다. 굳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이 자리서 변하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버릴 것 같다. 멀리 배낭을 메고 내려가는 팀을 보고 다시 호텔로 향한다.

드디어 스위트룸에 입성했다. 스위트룸이란 별명만큼 이곳에서의 풍경은 아름답다.

운해와 무지개로 천국의 아침을 연다. 운해와 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예쁜 무지개를 만들었다.
운해와 무지개로 천국의 아침을 연다. 운해와 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예쁜 무지개를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고 텐트에 앉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경이다. 사이트 정리가 끝나고 윈도The Window로 출발한다. 창문 모양의 바위틈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다. 윈도로 가는 길엔 기암괴석과 크리스털crystal(무색 투명한 석영)이 즐비하다.

로라이마 테푸이에는 크리스털이 널려 있지만, 단 한 톨이라도 밀반출할 수 없다. 트레킹이 끝나면 관리원이 가방과 몸수색을 하고, 발견 시 가이드는 자격 정지이며 반출자 또한 고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우려대로 윈도 너머로 보이는 건 오직 하얀 안개뿐이었다.

땀에 젖은 몸을 잠시나마 씻어낼 수 있은 천연 목욕탕인 자쿠지. 온천이 아닌 빗물이 모인 찬물이다.
땀에 젖은 몸을 잠시나마 씻어낼 수 있은 천연 목욕탕인 자쿠지. 온천이 아닌 빗물이 모인 찬물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노천탕Jacuzzi에 들러 오랜만에 씻기로 했다. 깊게 파인 바위 웅덩이에 고인 물은 천연 욕조 같다. 몸을 씻는 동안 안개도 걷히고 햇살이 내리쬔다.

간단한 수영과 물놀이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호텔로 돌아와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정상인 마베릭스톤에서 비박을 하고 싶었지만, 정해진 야영 터인 호텔 외에는 안 된다는 것이 가이드 헨리의 대답이었다. 대신 해가 있는 동안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정상에 누워 오래도록 경치를 감상했다. 그 어떤 호텔 스위트룸 못지않게 좋았다.

로라이마의 정상인 마베릭스톤에서 꿈에 그리던 경치를 즐긴다. 여기서 비박을 하고 싶었지만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야영이 불가능해 잠시나마 하늘을 지붕 삼아 누워 있었다.
로라이마의 정상인 마베릭스톤에서 꿈에 그리던 경치를 즐긴다. 여기서 비박을 하고 싶었지만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야영이 불가능해 잠시나마 하늘을 지붕 삼아 누워 있었다.

넷째 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제까지 본 괴암들도 놀라웠는데, 트리플 포인트Triple Point(베네수엘라, 브라질, 가이아나 세 나라 국경이 만나는 곳)의 길목에 즐비해 있는 바위들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풍화로 인해 이런 바위들이 생겨난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30분 만에 트리플 포인트에 도착했다. 트리플 포인트에서 브라질 쪽으로 내려가니, 크리스털계곡이 나타났다. 이제까지 봤던 자잘한 크리스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크리스털이 쌓여 환상적인 계곡을 이루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제법 큰 홀이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웅덩이라고 하는데, 아래엔 물이 흐르고 있고, 그 안쪽은 동굴이다. 호기심에 돌멩이 하나를 집어 물속에 던진다. 그러자 가이드 헨리가 돌을 던져 넣으면 비가 온단다. 코웃음을 쳤는데, 정말 차츰 안개가 몰려오더니 천둥 번개가 몰려와 밤까지 비가 내렸다.

로라이마에 올라서서 호텔로 향하는 길. 미로처럼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가기도 한다.
로라이마에 올라서서 호텔로 향하는 길. 미로처럼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가기도 한다.

다섯째 날, 옆집에 새로운 팀이 왔다. 브라질에서 온 그들에게 해먹을 빌려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 그렇게 내리던 비는 그쳤다. 안개가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행운의 무지개가 나타났다. 어딘가를 가지 않아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산하는 날, 그냥 가기 아쉬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베릭 스톤에 올랐다. 하산보다는 맥주 한 잔 하며 드넓은 경치를 즐기기 딱 좋은 날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배낭을 메고 하산을 시작한다. 오를 때와 달리 하산이 빠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라면을 끓여 먹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톡캠프에 닿자 로라이마로 올라가는 팀이 막 도착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종일 산을 내려오느라 땀으로 젖어 있었기에 배낭만 내려놓고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로라이마 정상에 있던 순간만큼 청량한 느낌이었다.

하산 마지막날, 로라이마를 두고 돌아가는 길은 지루하기만 했다. 자꾸만 멀어지는 로라이마와 쿠케난 테푸이를 아쉬움에 뒤돌아보곤 했다. 길가에서 파는 수박과 바나나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며 걷고 또 걸어 파라이테푸이에 도착했다. 가이드 헨리와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마침 산타 엘레나로 돌아가는 석유트럭이 있어 얻어 탈 수 있었다. 레이싱이라도 하듯 오프로드를 미친 듯이 달리는 트럭 뒤에서 빈 석유통과 함께 엉덩이를 들썩이며 어마어마한 먼지를 뒤집어썼다. 그 와중에도 무수한 별 만큼이나 무수히 많이 날아다녔던 반딧불이는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카나이마국립공원
Canaima National Park 트레킹 정보

필자는 산타 엘레나Santa Elena에서 쿠마라카파이Kumarakapay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여기서 트레킹 출발지인 파라이테푸이ParaiTepuy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해 현지 가이드를 고용(가이드 비용 70달러)했다. 일반적으로 산타 엘레나에 있는 여행사를 이용하면 호스텔 픽업, 가이드, 쿡, 포터를 포함한 스태프와 함께 트레킹을 하게 된다.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으면 공원 입장이 불가하다. 지정된 호텔(캠프사이트) 이외의 장소에서는 캠핑 금지이며 적발 시 벌금이 비싸다. 반드시 변기통을 지참해야 하며 트레킹이 끝난 후에는 고체화된 변을 확인한다. 트레킹 거리는 파라이테푸이에서 베이스캠프까지 21.5km, 베이스캠프에서 호텔 바실리오까지 4km, 호텔에서 톡캠프까지 13.5km, 톡캠프에서 파라이테푸이까지 13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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