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관한 한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자인 내게 엘브루즈 원정에 관한 이야기가 들린 것은 싱그러운 6월 말의 도봉산 산행에서였다. 이때 나는 엘브루즈라는 산이 러시아에 있고, 높이는 5,642m에 8월16일이 출발 예정이라는 짧은 설명을 들었을 뿐이었으나, 듣는 순간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8월15일이 일본의 추석이라는 생각에 반은 포기하고, 그래도 반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은 음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양력으로 명절을 지낸다. 그래서 시어머님께서 반대하실 것이
김관철 원정대원 8월4일, 강고트리(3,050m)에 도착하자 포터들이 몰려들어 서로 짐을 나르려 한다. 호텔로 짐을 옮기면서 하루 일당이 올라간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일부는 김치를 담그고, 일부는 짐 포장에 들어갔다. 카고백은 특히 신경을 써 일일이 비닐로 포장, 비에 새지 않도록 했다. 저녁식사엔 인도 도착 이후 처음으로 먹는 김치가 입맛을 당긴다. 다음날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포터들이 서로 가벼운 것을 지려고 아우성이다. 짐을 배분하니 포터가 52명이나 된다. 야영지를 확인하기 위해 선발대가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후발
임성묵 오버마운틴클럽 원정대장눈발이 심해진다. 30분 동안 명제형과 나는 아무 대화가 없었다. 덧옷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쏟아지는 눈을 겨우 피하고 있을 뿐이다. ‘길이 있을 텐데’. ‘이렇게 내려가야 하나’.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결정을 내려야했다. “형, 올라가자!”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100m 구간은 80도 경사의 실 크랙이 55m 정도 이어지고, 그 위로는 홀드 하나 없는 페이스다. 우리에게는 암벽화가 없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배낭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 출발한다. 아이젠이 바위를 긁는 소리가
네팔에서는 차(茶)를 만드는 방법이 독특하다. 펄펄 끓고 있는 우유에다 블랙차와 설탕을 적당히 넣고는 국자로 몇 번 저으면서 한 번 더 넘칠 정도로 끓으면 채에다 걸러 잔이 넘칠 정도까지 따른다. 네팔 사람들은 이것을 찌아라고 부른다. 네팔인들은 찌아를 잠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마신다고 보면 틀림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찌아를 대접하면 사양치 않는다. 어쩌다 외국인과 접촉할 기회가 있으면 찌아를 인심 좋게 대접한다. 늘 받는 것에 익숙해 있는 이들이지만 찌아 인심만큼은 그렇게 후할 수 없다. 네팔에 차가 들어온 것은 그리
아톰(atom)-. 우주소년 아톰이 아니다. 사전에서 찾으면 원자 또는 분할할 수 없는 것이라 나와 있다. 볼더링-. 예전 선배들은 볼더링을 등반이 아닌 연습, 혹은 애들이나 하는 유치한 유희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볼더링은 아톰처럼 모든 등반의 시작이자 기본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볼더링에서 무아지경에 이를 수도 있고, 극도의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자일도 확보물도 없이 매트 한 장과 암벽화만 가지고 순수한 동경심으로 미지를 향해 간다. 우리는 볼더링에 미쳐가고 있다. 7월22일 월요일, 뜨겁게 달아올랐던 국제 초청 볼더링
온 산이 기암절벽을 이루고, 특히 연화봉(蓮花峰)이라고 부르는 서봉은 깎아지른 절벽이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암봉으로, 어디서 바라보거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주봉인 남봉(2,160m)은 일명 낙애봉(落崖峰)이라고 부르며, 동쪽에 동봉(2,100m)을 두고 그 가운데 거대한 몸뚱아리를 틀고 앉은 위세가 당당하다. 동봉은 일명 조양봉(朝陽峰)이라고 부르는데 제일 동쪽 끝에 솟아 아침 햇빛을 제일 먼저 받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렇듯 2,000m대 봉우리 3개가 주축이 되어 산의 중심을 이루고, 게다가 북봉(1,61
애보트 산장(Abbot Hut·2,925m)에 예약하고 나서 집사람은 무척 흥분해 있었다.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라는 루이스 호수의 배경을 이루는 빅토리아산(3,464m)과 그 옆의 르프로이산(Lefroy·3,423m) 두 산자락이 만나는 해발 2,925m의 고갯마루에 있다는 이 산장은 우리에겐 꿈속에서나 그리던 곳이다. 이 고개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앨버타주의 경계이고, 요호 국립공원과 밴프 국립공원을 양발로 밟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애보트 산장은 지난 7월호에서도 간단히 소개했지만,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스위스
티벳의 수도 라사에서 몇 박 며칠이 걸려 도착한 카일라스. 지프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서도 성산(聖山) 카일라스가 보인다. 책에서만 봐온 그 카일라스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니 놀랍기만 했다. 해발 5,700m나 되는 산에 내가 도전한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넘친다. 카일라스를 올라가기 전 그 앞에 자리잡은 마을 다르첸에서 하루를 지내야 했다. 성산 앞에 있는 마을이라서 대원들 모두 좋을 줄만 알고 기대했다. 하지만 딴판이었다. 무법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이전에 지냈던 여러 마을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프에
7월24일은 예비일로 기상시각이 자율이라 느긋했지만 날씨 때문에 모두들 바빠졌다. 밤새 텐트를 두들기던 세찬 바람에 식당텐트가 무너져 날아간 것이다. 게다가 두통을 호소하는 대원까지 생겨났다. 식당텐트를 치고 베이스캠프 주위에 바람막이 돌을 쌓던 중 사고가 생겼다. 권석홍 대원이 돌에 손을 찧은 것이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대원들 모두 많이 놀랐다. 오른손을 다치고도 밝은 표정으로 비디오 촬영까지 잘해준 권 대원이 무척 고맙고 자랑스럽다. 텐트 보수에 오전을 다 보내고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다시 돌탑을 쌓은 다음 쉬는 동안 날씨가
4월부터 오지탐사대 훈련에 참가하면서 여러 지역 산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팀이 나뉘어지고 여러 차례 훈련을 받으면서 얼굴들을 익혀 갔다.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하다보니 재미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었다. 발대식을 마친 인도 가르왈히말 탐사대(대장 박호근)는 서울에서 모여 탐사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마련하면서 바쁘게 지냈다. 다들 어떤 탐사가 될지 모르기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이번 히말라야 탐사를 새로운 산과의 만남을 넘어 산행관을 굳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제2회 아시아산악연맹 합동등반에 참가하기 위해 7월12일 인천 국제공항에 이철주 대장과 김재봉 부대장을 비롯한 모든 대원이 모였다. 각자 준비한 공동장비와 식량을 확인하고 화물을 부치려고 하니 1인당 25kg밖에 가지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카자흐스탄항공에서 무게를 철저히 통제하고 추가 경비가 너무 비싸 도저히 충분한 양의 장비와 식량을 가져가기 힘들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대장, 부대장, 그리고 이의재 사무국장의 등반장비와 식량 일부를 제외하고, 꼭 필요한 장비와 고소식량만 챙겨 어렵게 비행기에
세계적인 불가사의 마추픽추(Machupicchu)는 잉카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황금에 눈이 먼 스페인 침략자들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파괴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전설의 도시는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깊은 산중,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오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도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잉카제국 멸망 후 400여 년 뒤의 일이다. 1911년 미국인 역사학자 하이럼 빙험(Hiram Bingham)은 잉카 후예인 농부의 도움을 받아 전설로만 전해오던 이 잊혀
네팔은 7월과 8월이 되면 과일이 풍성하게 나온다. 품종 개량을 하지 않아서 모든 과일이 작지만 맛은 달고 신맛이 좀 난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과일들은 거의 다 있다. 딸기, 수박, 복숭아, 포도, 자두, 망고 등이 그렇고, 여름 절정기부터 끝 무렵까지 배와 거봉포도도 난다. 네팔에서는 이 온갖 과실이 나는 7,8월을 몬순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름철 장마기간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영락없이 내리기 시작한 비는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어김없이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다. 주위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밝았다 하면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