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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등산시렁] 등산 싫어하는 그를 유인, 눈치 못 채게 계속 말을 걸었다

윤성중
  • 입력 2022.10.05 09:36
  • 수정 2022.10.12 10:12
  • 사진(제공) : 그림=윤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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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싫어하는 사람과 인터뷰

목골산 정상에 선 윤범식. 하늘에 비행기가 떠 간다. 그는 한때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의 아트디렉터였다. 산과 하늘 사이에 서있는 모습이라! 뭔가 운명적인 한 컷이다!
목골산 정상에 선 윤범식. 하늘에 비행기가 떠 간다. 그는 한때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의 아트디렉터였다. 산과 하늘 사이에 서있는 모습이라! 뭔가 운명적인 한 컷이다!

산에 가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을 인터뷰했다.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산 좋아하는 사람만 수두룩하게 만났다. 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과 산에 관한 얘기를 한 건 처음이다. 산을 미워하는 그의 이름은 윤범식(42세). 우리 회사 디자이너다. 매달 발간되는 월간 <山>(이하 월간산)을 만든다. 편집부에서 글과 사진을 그에게 주면 그걸 가지고 뚝딱뚝딱 ‘책’을 만든다. 그는 월간산에서 일하지만 산을 굉장히 싫어한다. “산에 한번 가죠”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크게 가로젓는다. 그에게 몇 번 더 똑같이 물었다. “산에 한번 가죠.” 그가 대답했다. “아, 싫다니까!”

그는 왜 산을 싫어할까? 매달 산 사진과 글을 봐서 질린 걸까? 어떤 트라우마가 있나? 궁금했다. 그래서 꼬셨다. 

“등산시렁 코너가 있는데요, 여기에 선배가 등장하면 딱이에요.” 

몇 달 동안 그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그가 허락했다. “그래. 가자, 가!”

쉬운 산을 골랐다. 큰 산에 가서 나쁜 기억을 심어주면 정말 죽을 때까지 산에 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의 집 뒤에 있는 목골산(63m)이 눈에 띄었다. 여차하면 목골산 넘어 관악산까지 그를 끌고 가겠다고 계획했다. 그는 이 동네에서 약 7년을 살았지만 목골산에 올라본 적이 없다. 집 뒤에 산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산인지 아니면 흙더미인지 그에겐 알 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산악인처럼 생겼다. 옛날말로 하면 ‘소도둑’ 같은 인상이다. 키 180cm가 넘고 몸무게는 90kg에 이른다. 그의 얼굴을 가면 쓰듯 뒤집어쓰고 나가면 평생 길에서 누가 시비 걸 일은 없을 것 같다.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수다쟁이다. 만나자마자 전날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어제, 가족들이랑 심리상담 받았어. 나무를 그려보래서 그렸는데, 나보고 자아가 약하대. 눈물이 줄줄 나오더라니까. 좋았어. 너도 받아봐.”

“오, 그래요? 어떻게 그렸어요? 여기 한번 다시 그려보세요.” 

나는 그에게 수첩을 건넸다. 그는 슥슥 그렸다. 디자이너가 그린 나무 같지는 않았다. 매우 투박하고 화가 난 듯한 나무였다. 나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냥 넘어갔다.

“집 뒤에 산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알고 있었지. 아내하고 아이들은 가끔 가더라고. 집 뒤로 올라가서, 호암사? 거기까지. 갈 때마다 애들이 ‘아빠, 같이 가’ 하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산 싫어해. 잘 다녀와’라고 얘기해.”

“오늘은 그럼 굉장히 영광스런 날이군요! 그런 사람을 데리고 산에 가다니.”

“….”

그를 천천히 집 뒤로 유인했다. 계속 말을 걸었다. “산이 대체 왜 싫죠?” 그가 말했다. 

“네가 항상 얘기했잖아. 힘든 걸 넘었을 때 어떤 쾌감이 있다고. 나는 아직 그런 걸 느껴보지 못했고. 그 뭔가가 뭔지 모르는 상태인데 알고 싶지 않아. 나는 위험한 게 싫어.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고 위험한 것 같아.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그 뭔지 모를 쾌감을 느껴야 해? 그리고 육체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어떤 결과물을 얻고 싶지는 않아.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나는 지금 만족해. 고소공포증도 있어. 월간산 만들면서 여러 번 봤는데, 절벽 위에 사람이 서 있는 사진만 봐도 오싹하다니까.”

“그런데 바다낚시는 가끔 가잖아요. 바다도 위험한데.”

“물에 대한 공포는 없어. 그리고 배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잖아. 배가 뒤집어져도 물에 뜰 수 있잖아. 아, 어렸을 때 보이스카우트를 했는데, 알펜시아에서 야영을 했지. 거기 수영장에 갔다가 빠진 적이 있어. 그것 때문인가? 민물 낚시는 안 가.”

산에 올라가면서 말을 많이 시킨 탓인지 잠깐 넋이 나간 윤범식. 그는 위험한 걸 싫어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정속주행을 선호한다. 산도 그에겐 위험지역이다.
산에 올라가면서 말을 많이 시킨 탓인지 잠깐 넋이 나간 윤범식. 그는 위험한 걸 싫어한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정속주행을 선호한다. 산도 그에겐 위험지역이다.

위험 감지 능력이 있는 것 같은 그는 대학 때 전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디자이너로 18년 일했다. 처음에는 충무로의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에 있다가 ‘디자인하우스 DES팀’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MorningCalm> 아트디텍터를 맡았고, 모닝캄이 다른 회사로 넘어갈 때 그도 같이 따라갔다. 7년 동안 모닝캄 디자인을 책임지다가 코로나 타격으로 모닝캄이 휴간하며 퇴사. 다음 KTX매거진팀으로 옮겼고, 역시 코로나 때문에 회사가 망해서 월간산으로 왔다. 결국 월간산에서 나를 만났고. 평생 오를 생각 없었던 산에 가게 됐다. 그로선 참 귀찮은 일이었을 테지만 나는 여기서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힘을 감지했다. 어쨌든 오르막 구간에 진입했다는 걸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최근에 선배를 자극한 게 뭐죠? 예를 들면 어떤 그림이나 작품을 보고서 ‘와! 이거 멋있다’면서 흥분하게 만든 거요.”

“그런 거 없는데.”

“그럼 디자인 작업할 때 주로 어떤 걸 참고하세요? 영감을 주는 게 뭐죠?”

“핀터레스트(여러 디자인 작품들을 모아 놓은 인터넷 사이트)?”

“본인만의 작업을 할 계획은 없어요?”

“없어.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야. 나는 클라이언트 잡을 하는 사람이야. 그 정도 레벨의 사람이 아니야. 현실에 충실하다고 할까? 현실이 없으면 미래가 없잖아. 지금 만족하면 그걸로 끝이야. 내가 만족하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면 끝!”

“그럼 선배에게 만족감을 주는 게 뭐죠?”

“지금 제1은 돈. KTX매거진이 휴간하면서 일자리를 잃었어. 그때 멘털이 상당히 나갔었거든. ‘내가 뭘 잘못했지?’ ‘나 가장인데, 아내하고 애들은 어떡하지?’ 하면서.”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친구들을 데리고 산에 갔는데, 길을 잃어버렸을 때랑 비슷한 거군요? 친구들은 나만 믿고 산에 왔는데, 그들이 불안해 할까봐 필사적으로 길을 찾는 느낌?”

“맞아.”

“그래서 산에 다닐 여유가 없었군요?!”

“그런가? 굳이 그렇게 연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오르막이 끝났다. 벤치가 있어서 우리는 거기에 앉았다. 날파리가 우리 얼굴 주변에서 앵앵댔다. 그래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모기가 이마에 달라붙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말을 많이 시켜서 잠깐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지금 산에 왔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에게 물어봤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 산에 온 것 같지 않아.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어.” 

우리는 더 올라갔다. 길이 넓어졌다. 나란히 걷기엔 좁았다. 잠깐 동안 말 없이 걸었다. 그의 입에서 거친 숨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재빨리 아무 질문이나 또 했다.

“종교는 뭐죠?”

“없는데, 교회보다 나는 절이 좋아.”

“왜요?”

“절은 대부분 경치가 좋은 데 있으니까.”

“오, 절은 또 대부분 산에 있는데, 산에 간 적이 있나 보죠? 저한테 뭘 숨긴 거예요?”

“아, 하동 쌍계사에 간 적 있어. 잡지사 일 때문에. 일출 찍어보겠다고 올라간 적이 있긴 하네.”

질문거리가 떨어져서 침묵의 시간과 마주하기 전에 목골산 정상에 섰다. 숲이 에워싸 경치가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이 아쉬웠지만 인증사진은 찍어야지. 

“선배, 저기 나무 앞에 서 보세요.” “응.”

마침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범식 선배와 숲과 비행기가 휴대폰 카메라에 담겼다. 그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이것 역시 굉장한 우연, 운명이라고 느꼈다. 비행기(모닝캄과 관련)와 산 사이에 서있는 윤범식이라니. 

그는 당연히 등산화가 없다. 산에 가는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왔다.
그는 당연히 등산화가 없다. 산에 가는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왔다.

*에필로그 

목골산에서 내려와 그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물었다. 

“선배 인생의 공식 첫 산행 어땠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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