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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등산시렁 산에서 명상] 오랜 여친과 헤어진 동네 형과 토닥토닥 야간 산행

윤성중
  • 입력 2022.12.23 07:10
  • 수정 2022.12.28 10:04
  • 사진(제공) : 그림=윤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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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명상하면 위로될까?

북서울 꿈의 숲 끝에 있는 산에 올랐다. 명상하기 썩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북서울 꿈의 숲 끝에 있는 산에 올랐다. 명상하기 썩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우성 시인. 그는 박식하다. 아는 게 많아서 내가 어떤 질문을 하면 척척 답한다. 그래서 나는 그와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그와 얘기하다 보면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늘 그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는 매우 바쁘다. 나처럼 그에게 답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그는 우울증을 앓는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SNS에 슬픈 감정을 낱낱이 밝혔고, 그 여파로 어느 날 명상을 시작했다고 알렸다. 잘 나가는 사업가인 그가 우울증에 걸렸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건강한 사람을 시름시름 앓게 하는 우울증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명상을 하면 나아지는 것일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시간 괜찮으세요? 저 산에서 명상해 보고 싶어요. 싱잉볼 산행해요!”

“그래, 하자. 고고다.”

그의 목소리는 우울증 걸린 사람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 등 여러 후보지를 나열했다. 그는 바빠서 멀리 갈 시간이 없다고 했다. 결국 그의 집 앞에 있는 북서울 꿈의 숲에 가기로 했다. 그는 “거기 산이 있어?”라고 했는데, 지도 어플을 켜서 확인해 보니 숲 뒤에 작은 산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검색창에 ‘명상’이라고 쳤다. 지식백과에 이렇게 나왔다.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아무런 왜곡 없는 순수한 마음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초월transcendence이라고 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것이 명상meditation이다.”

고통, 해방, 초월 등 대단한 단어들이 잔치를 벌였다. 나는 그게 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우성을 만나면 물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녁 8시, 공원 앞에서 이우성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형, 괜찮으세요? 좋아 보이는데요? 그런데, 형은 늘 힘들었잖아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늘 힘들었다고? 내가? 내가 우울한 캐릭터였나?”

“형은 굉장히 예민했어요.”

“그래, 그때는 전부 그냥 예민했던 거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마음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어. 아무리 힘들어도 우울증에 걸린 적은 없었어.”

나는 그가 힘들어하는 걸 자주 봤다. 잡지사 편집장을 할 때 그랬고, 하던 사업이 망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예전 일을 다 잊은 걸까?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왜 힘들었어요?”

“7년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졌잖아.”

“아!” 나는 탄식했다.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가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만났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이번엔 진짜 헤어진 것 같았다. 그는 설명했다. 

“이번에는 너무 힘들었어.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생각하다가 고민 상담하는 모임에 나갔어. 거기서 뭔가 위로를 받긴 했는데, 근데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야. 결국 병원에 갔지. 그랬더니 의사가 우울증 초기 증세래. 약을 먹으래.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라는 거야. 약을 먹었지. 하지만 약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싶지 않은 거야.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명상을 하기로 했어.”

나도 언젠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대로를 걷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사람이 거리로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광경이 싫었다. 거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건 공황장애인가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의사가 그러는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대단한 게 아니래. 자기가 느낀 심리상태가 뭔가 좀 심각하다고 의심되면 그게 이미 병이라는 거지. 처참한 심정이 들고, 아무 것도 못할 것 같고. 그런 정도?” 라고 했다.

‘처참한 심정은 어떤 것일까?’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왜냐하면 그가 울음을 터뜨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숲을 가로질렀다. 조명이 거의 없어 어두침침했다. 그런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사람들은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들은 우울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몸이 자동으로 그 자리에서 아픔을 표현하고, 그걸 본 사람 누구나 달려들어 위로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지면 우울증 환자가 줄어들까? 글쎄. 어떤 사람은 어설픈 위로는 우울증 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거 참,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중에 그가 말했다. “갑자기 자신이 처참하다고 느꼈을 때, 이럴 때는 큰 걸 하려고 하지 말래.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걸 하래!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게 숨을 쉬는 거야. 딥 브레스! 숨을 쉬면서 내 호흡에 집중하는 거야.”

명상을 하면서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든 건 아니다. 그냥 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명상을 하면서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든 건 아니다. 그냥 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형!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산에서 명상하면 귀신에 씔 수도 있대요.”

“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겁나지 않아. 우리가 겁내는 건 이런 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겁나는데요?”

“하나 있지. 어떻게 사람 마음이 종이 접은 것처럼, 그렇게 딱 돌아서지? 그게 가능하냐고? 나는 그게 너무 이해할 수 없었던 거야. 근데, 여기 밤에 올라가도 되냐?”

“왜요, 형, 아까는 아무것도 겁 안 난다면서요.”

우리는 공원 끝까지 갔다. 그리고선 오르막을 올랐다.

내면 아이와 마주하다
오르막은 얕았다. 우리는 금방 꼭대기에 닿았다. 정상에는 공터가 있었다. 운동 시설과 등받이 없는 의자가 나란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숲이 시야를 가렸고, 그 사이로 아파트 불빛이 보였다.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명상할까?”

“네, 좋아요 형.”

차 소리가 시끄러웠다. 명상을 하기엔 썩 좋은 자리 같지 않았는데 일단 앉았다. 그가 명상에 관해 설명했다.

“어느 날 궁금하더라고. ‘명상을 수십 일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봤지. 이건 내 의견이야. 명상의 기본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을 다 분리시키는 거야. ‘이 생각들은 내가 아니다. 그저 생각일 뿐이다’라면서. 그리고 나서 제3자가 돼서 나를 바라보는 거야. 그러는 과정, 그게 명상이야. 그러기 위해선 생각들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나’에 집중해야 해. 나 자신에 집중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호흡에 집중하는 거야. 자,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해봐.”

“음식 냄새가 나는데요.”

“그래, 여기 좀 냄새 난다. 이런 생각들이 느껴질 수 있어! 근데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에 집중할 수 있어. 이렇게 자꾸 내면으로 들어가는 거야. 호흡만 생각하면 다른 생각들이 차단돼.”

“생각을 안 한다는 거죠?”

“생각을 안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게 목표야. 생각들은 나에게 주는 자극이야. 자극에 집중하지 말고 본연의 나에게 집중해야 해.”

“음, 본연의 나, 좀 더 쉬운 예 없을까요?”

“나의 뼈, 내 혈관. 이런 것들이 더 가까워. 명상의 개념을 더 파고들면 ‘내면 아이’라는 게 나와. 그러니까 그건 원초적이고 상처받지 않은 가장 순수한 대상이야. 명상은 그러니까 내면 아이를 바라보는 거야.”

“순수한 나는 이렇게 쪼그리고 있나요? 아니면 누워 있나요?”

“내가 만약 정말 힘든 상황에 있다면 내 내면 아이도 쪼그리고 있겠지. 아, 이런 것 같아. 내면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거지. 명상은 내면 아이를 지키는 과정일 수도 있어!”

10분 동안 싱잉볼 소리가 나오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소리에 집중하자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10분 동안 싱잉볼 소리가 나오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소리에 집중하자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유튜브를 틀었다. 그가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 이름은 ‘명상하는 그녀’. 싱잉볼이 나오는 영상이었다. 그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우웅~”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눈을 감았다.

나는 싱잉볼이 울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가 울렸다. 파도의 물결이 내 허리춤에서 출렁대는 것 같았다. 노란빛이 나를 감쌌다. 따뜻했다. 머릿속에 석가모니 모습을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찰랑대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미소를 머금은 채.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어떤 여자가 말했다. 

“천천히 몸을 깨우고 의식을 지금 이곳으로 가져와 편안하게 눈을 뜹니다.” 

나는 눈을 떴다. 벌써 10분이 지나 있었다.

“오, 형! 저 석가모니를 봤어요. 그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어요.”

“그래? 10분 만에 너무 해탈한 거 아니냐? 나는 모기가 계속 무는 거야. 여기랑, 저기랑.”

명상이라는 걸 한 번도 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명상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살 거야. 암벽등반을 한다거나, 집을 청소한다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이우성은 요즘 압축된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몇 년에 걸쳐 느낄 감정을 하루 안에 다 느끼는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명상은 압축된 감정에 구멍을 내고 생각들이 숭숭 빠져나가게 하는 건가? 그는 이날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갔다. 

*월간산 12월 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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