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100kg 짜리 짐 세덩이를 들고 배에 오르다

정갑수
  • 입력 2022.10.05 09:33
  • 수정 2022.10.11 17: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2화
블라디보스톡 행 배에서 '캠핑 달인' 자매도 만나

동해항을 떠나는 이스턴드림호에서 본 백두대간.
동해항을 떠나는 이스턴드림호에서 본 백두대간.

우리나라는 지난 9월 초 한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PCR 검사를 폐지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PCR 검사를 요구한다. 올해 안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없어지길 기대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 6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져만 간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움직이기 힘들기 전에 자신에게 1년 동안 휴가를 준다는 의미에서 차박 세계일주를 계획했다.

캠핑카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해당 구청에서 여권, 국제운전면허증, 자동차등록증을 가지고 자동차 일시반출승인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면 구청에서 자동차등록증서(영문)를 발급해준다. 이것을 가지고 세관에 가면 자동차일시수출입신고서를 만들어준다. 자동차를 정식으로 수출입 통관을 하려면 차량 가격에 대해 25%의 관세와 환경세, 등록세 등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여행 등 단기목적으로 차량을 수출입할 때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모든 차종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등록증에 캠핑카로 구조변경한 차만이 가능하다. 

이스턴 드림호 선내 식사.
이스턴 드림호 선내 식사.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입하기 위해서는 세관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면 간단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이렇게 신고를 완료하고 선박회사에 선적비용과 부대비용 등을 지불한다. 차량을 수출할 때 검역이 이루어지므로 차량 내의 모든 개인소지품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반출한 차량은 일시수출입이므로 2년 안에 돌아와야만 한다. 

몇 년 전 1년 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계속 움직이다 보니 체력도 체력이지만, 기동성이 떨어져서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전거로 여행하다 보면 속도는 좀 나겠지만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의 한계와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 결국 자동차로 움직이면 기동성과 시간, 경비, 체력 등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15년 이상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했지만 중고 자동차를 구입하고 캠핑카로 구조변경하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톡역.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톡역.

1년 생활할 100kg 짐 싣고 출항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몸의 면역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인 것처럼 마음의 면역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세상과 만나고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평범하고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은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안정적으로 살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에 늘 해오던 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것은 불편하고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 안정적인 틀을 깨는 것은 마치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새로운 길을 탐험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일과 가정,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발목을 잡는다. 먼 훗날 지켜지지 않을 약속과 대출받은 날짜를 핑계로 여행 일정을 계속 늦춘다. 

블라디보스톡의 레닌 광장.
블라디보스톡의 레닌 광장.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출항하는 배가 7월 22일부터 재개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5~6월 동안 알래스카 데날리 등반을 다녀오느라 준비가 늦어진 김에 아예 추석을 보내고 출발 날짜를 잡는다. 일주일에 한 편밖에 출항하지 못하는 관계로 9월 16일 떠나는 배의 티켓을 끊는다. 그런데 문제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눈이 일찍 내린다고 한다. 아무리 4륜 구동 차라지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의 불안과 걱정은 어차피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니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블라디보스톡으로 출발 날짜가 잡히니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빠진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캠핑카에 짐을 싣고 가면 편할 텐데 러시아 세관에서 통관 날짜가 일주일 정도 지연되는 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C-56 잠수함. 잠수함 실내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C-56 잠수함. 잠수함 실내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적재 화물은 1kg당 4유로씩 세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개인 짐으로 싸서 들고 가는 수밖에 없다. 1년 동안 생활할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다 보니 커다란 짐이 세 덩어리, 무게가 거의 100kg 가까이 나간다.

살아오면서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았다는 느낌이다. 스스로 미니멀리스트라고 자처하지만 마음의 짐보다 생활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나는 날, 서쪽에 바라보이는 백두대간이 유난히 낯설어 보인다. 1869년도에 북녘의 대기근으로 인해 연해주 지방으로 떠난 조선인들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땅을 떠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나와 같은 배를 탄 조씨 자매는 코로나 때문에 1년 6개월을 기다렸다가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그녀들은 스타렉스 내부에 직접 평탄화 작업을 할 정도로 차박 마니아였다. 심지어 배를 타러 동해항으로 오기 전까지 제주도에서 3개월 동안 차박을 하면서 지내왔다, 아마 시베리아 횡단을 하면서 그녀들과 여러 번 마주칠 것 같다.

블라디보스톡 독수리 요새에서 바라본 금각교.
블라디보스톡 독수리 요새에서 바라본 금각교.

6만 3,000명이던 한인, 지금은 600명뿐

블라디보스톡이 속한 연해주는 발해의 옛 영토의 일부였다가 이후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1856년부터 5년 동안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제2차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완패한다. 러시아 제국의 중재 하에 베이징 조약을 맺어서 청나라는 영국에 홍콩을 할양 조차하는 등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또한 러시아 제국은 연해주 지역을 받게 된다. 연해주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부동항으로 1891년 니콜라이 2세가 시베리아 횡단철도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톡과 이곳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우수리스크는 한인들의 정착지로 유명하며 해외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가 남다른 곳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이 도시에 들러 최재형 선생한테 자금을 지원받았다.

1860년 연해주 지역에 최초로 조선인 13가구가 정착했으며, 1869년 한반도 북녘의 대기근으로 조선인들의 이주가 급증하여 1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1910년대 초반까지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이라는 한인 거주지의 인구는 무려 6만 3천명으로, 비슷한 시기 일제 강점기의 경성부의 인구가 27만여 명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가장 먼저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연해주에 거주 중이던 한인 18만 명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현재 블라디보스톡 인구는 60만 명인데, 한국인들은 6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의 수려한 해안선을 볼수 있는 루스키 섬 트레킹.
블라디보스톡의 수려한 해안선을 볼수 있는 루스키 섬 트레킹.

연해주에 가까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시호테-알린Sikthote-Alin 산맥과 캄차카 화산이 있다. 시호테-알린은 몽골어로 ‘해안 산맥’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의 프리모스키와 하바로프스크 크라이스Krais에 있는 산맥으로 블라디보스톡에서 북동쪽으로 약 900km 뻗어 있다. 시호테-알린은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온대 지역 중 하나이다. 북부 타이가 지역의 전형적인 순록, 우수리 불곰에서부터 열대종인 아무르 표범, 시베리아 호랑이, 아시아 흑곰들이 공존한다. 2001년 유네스코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들의 생존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였다. 

캄차카 화산은 캄차카 반도에 160개 화산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 29개는 여전히 화산활동을 하고 있다. 클류채프스카야 소프카(4750m)는 북반구에서 가장 큰 활화산이며, 완벽한 원뿔 활화산인 크로노츠키Kronotsky가 가장 눈에 띈다. 캄차카의 아득한 옛적 모습과 ‘태평양 화산 고리Pacific Volcanic Ring’ 특유의 놀라운 화산 밀집 지역을 보여 준다. 이는 해마다 10㎝씩 태평양 대륙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지구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화산, 호수, 강, 특별한 해안선으로 이루어진 캄차카 반도 화산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화산군은 연어의 산란 장소로, 그리고 베링 해의 해안 지역을 따라 야생 동물이 많이 밀집한 장소로 최고의 자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캄차카는 블라디보스톡에서 2000km 떨어져 있으며, 육로는 길이 없어서 비행기나 배로 가야만 한다. 캄차카에 가보고 싶었지만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했으므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아쉽게도 패스할 수밖에 없었다.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