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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마타누스카] 이토록 장엄한 빙하도 언젠가 숨이 멎겠지…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3.01.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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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세계여행] 알래스카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마타누스카빙하는 알래스카 대륙에 있는 10만 개의 빙하 중 세계 최대의 육지 빙하로 스카-수시트나계곡에서 시작해서 마타누스카강까지 무려 27마일이나 이어진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마타누스카빙하는 알래스카 대륙에 있는 10만 개의 빙하 중 세계 최대의 육지 빙하로 스카-수시트나계곡에서 시작해서 마타누스카강까지 무려 27마일이나 이어진다.

알래스카는 빙하 천국이다. 약 10만 개의 빙하가 산과 계곡, 바다를 뒤덮고 있다. 그중 마타누스카빙하Matanuska Glacier는 알래스카 대륙에 있는 10만 개의 빙하 중 세계 최대의 육지 빙하이다. 마타누스카-수시트나Matanuska-Susitna계곡에서 시작해서 마타누스카 강까지 추가치산맥의 계곡을 메운 빙하는 무려 27마일이나 이어진다. 앵커리지에서 북동쪽 글렌 하이웨이Glenn Highway를 따라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마타누스카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 자동차로 빙하 입구까지 이동하고 걸어서 깊은 빙하 속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글랜 하이웨이를 이용하면 앵커리지에서 마타누스카까지는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앵커리지에서 마타누스카로 이동하며 만나는 글랜 하이웨이의 창 밖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마타누스카빙하가 아니어도 드라이브 코스로도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팔머나 앵커리지에 머물고 있다면 완벽한 당일 여행이 될 것이다.

에지 네이처 트레일에서 바라보는 마타누스카빙하. 에지 네이처 트레일은 빙하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에지 네이처 트레일에서 바라보는 마타누스카빙하. 에지 네이처 트레일은 빙하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알래스카 1번국도, 글렌 하이웨이를 달리다

마타누스카빙하까지 가는 동안 숨 막힐 듯한 장엄한 자연이 펼쳐진다. 주카치주립공원Chugach State Park의 수많은 산들과 빙하들이 켜켜이 이어진다. 정확한 이름을 모르니 너무 아쉽기는 해도 가는 여정 또한 알래스카의 경이로운 자연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멋진 시간이다. 창 밖의 풍경 하나만으로도 알래스카에 온 이유가 충분할 정도로 정말 멋지다.

글렌 하이웨이뿐 아니라 알래스카 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도로가에 카메라 그림이 그려져 있는 표지판이 있다. 일명 뷰포인트이다. 특히 글렌 하이웨이에는 카메라 표지판이 참 많다.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하고 알래스카의 대자연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아보지만 너무 장엄한 자연이라 내 눈에 보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앵커리지를 출발해 팔머Palmer 방향으로 1시간 정도 달려서 에클루트나 플래츠Eklutna Flats를 통과하며 추가치산과 탤키트나산Talkeetna Mountains의 우뚝 솟은 풍경을 즐기고 나니 파이오니어봉Pioneer Peak도 살짝 고개를 내민다. 

에지 네이처 트레일은 마타누스카빙하 조망뿐 아니라 숲이 우거져 걷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에지 네이처 트레일은 마타누스카빙하 조망뿐 아니라 숲이 우거져 걷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팔머를 지나면 마타누스카강과 크닉강Knik River을 바라보고 멀리서 크닉빙하를 엿볼 수 있다. 에어보트 투어를 이용하면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마타누스카빙하를 처음 보기 직전에 왼쪽으로 멋진 암석 빙하가 있다. 암석 빙하는 실제로 얼음 빙하보다 훨씬 희귀하며 차가운 암석과 암석 파편의 특정 조합에 의해 형성된다. 암석 빙하에는 많은 양의 숨겨진 얼음이 있어 일반 빙하보다 훨씬 느리긴 해도 흘러내린다. 

약 166km 지점에 있는 마타누스카빙하 주립 휴양지Matanuska Glacier State Recreation Site에는 12개의 캠프장이 있고 물 펌프, 옥외 변소, 화덕 및 피크닉 테이블이 갖춰져 있다. 빙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지만 빙하투어를 할 수 없는 경우엔 마타누스카빙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스팟이기도 하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근처의 에지 네이처 트레일Edge Nature Trail이다. 에지 네이처 트레일은 마타누스카빙하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미니트레일로 거리는 1.6km, 트레킹 시간은 30~40분이면 충분하다. 빙하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조망뿐 아니라 숲이 우거져서 걷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낙수처럼 조금씩 녹아내린 빙하수가 파도를 치며 빙하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낙수처럼 조금씩 녹아내린 빙하수가 파도를 치며 빙하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대자연의 감동을 느끼다, 마타누스카빙하

마타누스카빙하는 배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 있어서 더 인기가 좋다. 글렌 하이웨이에서 마타누스카로 이어지는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도로이다. 얼어 있던 땅이 녹는 봄에는 특히 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매우 좁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투어오피스가 있다. 이곳에서 투어티켓을 구입해야만 마타누스카빙하까지 자동차로 진입이 가능하다. 아쉽게도 빙하로 진입하는 땅이 사유지이다. 내가 지불한 비용이 빙하까지 가는 도로 유지관리에 사용된다고 하지만 살짝 의구심이 생긴다. 알래스카의 육지 빙하 중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빙하로는 엑시트빙하Exit Glacier가 있다. 입장료가 없긴 하지만 마타누스카빙하처럼 빙하 위를 걸어 다닐 수는 없다.

2022년 이전에는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빙하가 녹으면서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해 이젠 반드시 가이드를 동반하는 투어를 이용해야만 한다. 티켓을 구입하면 빙하 바로 앞까지 차를 계속 운행할 수 있다.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료를 내고 작은 다리를 건너니 빙하 트레일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다. 

마타누스카빙하 깊숙이 들어간 투어객들이 감탄을 하며 빙하를 즐기고 있다.
마타누스카빙하 깊숙이 들어간 투어객들이 감탄을 하며 빙하를 즐기고 있다.

가이드를 배정받고 투어팀에 합류했다. 한 팀의 인원은 10~20명 정도. 빙하투어 소요시간은 2시간 내외. 복장이나 신발에 관해서 크게 지켜야 하는 규칙은 없다. 그러나 얼어 있는 길이 상당히 미끄러워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는 편이 좋다.

내가 속한 팀은 밝고 쾌활한 여자가이드가 배정되었다. 첫 인상이 참 좋다. 첫 인사를 나누고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특히 걸을 때 자신의 뒤에서 팀을 이탈하지 말고 걸어 줄 것을 당부한다. 얼음이 녹아서 갈라진 크레바스나 홀이 있어서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투어를 진행하며 마타누스카빙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그녀니까 안전을 위해서는 그녀의 시야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팀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한 명 있다. 아이의 눈은 호기심 천국이다. 아이가 무탈하게 이 투어를 마쳐주길. 

꽤 가까이에 있을 줄 알았던 빙하산군은 생각보다 더 멀다. 처음엔 그냥 맨땅이다. 흙길을 걷다 보니 점점 흙은 없어지고 질퍽거리는 진흙길이 된다. 가이드는 장화를 신고 진흙 속으로 들어가 걸으며 그 땅의 상태를 우리들에게 보여 준다. 마치 찰진 밀가루 반죽처럼 끈적거리고 꽤 깊숙이 들어간다. 그 속은 얼음이라고 한다. 빙하가 계속 녹고 있음이 실감이 든다. 예전에 빙하가 여기까지 내려왔었다고 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진흙 속으로 들어갔다. 운동화는 진흙에 빠지고 아이 엄마는 당황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즐겁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있음을 보여 주는 흙과 얼음이 뒤섞인 구간. 이 구간도 머지않아 진흙길로 변하고 결국은 맨땅으로 변화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있음을 보여 주는 흙과 얼음이 뒤섞인 구간. 이 구간도 머지않아 진흙길로 변하고 결국은 맨땅으로 변화된다.

흙과 얼음이 뒤섞인 길은 걸을 때마다 마치 셔벗처럼 바삭 소리가 난다. 흙에 섞여 있는 얼음도 빛이 반사되니 반짝거린다. 그 길이 끝나고 완만한 얼음의 땅으로 들어선다. 길이 상당히 미끄럽고 얼음에 반사되는 빛에 눈이 부시다. 미끄러워서 걷기가 조금 불편하다 싶었는데 가이드가 아이젠을 나누어준다. 빙하군이 시작되는 곳에 아이젠이 가득 담겨 있는 박스가 있다. 대부분 처음 신어보는지 아이젠을 받아들고 어쩔줄 모른다. 가이드가 시범을 보이고 모두들 진지하게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줄 아이젠을 신발 위에 신는다. 아이젠은 신고 걸을 때는 조금 불편하지만 빙하 위에서는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준다.

이제부터는 빙하 위를 본격적으로 탐험한다.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빙하 사이를 걷는다. 빙하 녹은 물이 마치 수도처럼 떨어지는 곳에서 가이드가 잠시 멈추고 물을 마신다. 빙하물은 식수로 그냥 마실 만큼 깨끗하다고 한다. 가이드가 일어나기 무섭게 아이가 앉아서 마시고 그 아이가 일어난 후에는 내가 그 자리에 앉는다. 나도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하다. 빙하물은 남미, 알프스, 북유럽, 뉴질랜드 등에서도 마신 경험이 있어서 그 물맛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역시 빙하물은 아주 담백하고 깔끔하다. 너무나 싱싱한 빙하수. 다른 곳의 빙하물과 거의 비슷하지만 확실히 일반 물과는 맛이 다르다. 이렇게 낙수처럼 조금씩 녹아내린 빙하수가 파도를 치며 빙하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빙하 녹은 물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하얀 빙하가 녹았는데 빙하물은 왜 푸를까? 빙하가 얼어 있을 때는 내부에 포함된 기포에 빛이 산란되어서 하얗게 보인다고 한다.

식수로 그냥 마실 만큼 깨끗한 마타누스카빙하물.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식수로 그냥 마실 만큼 깨끗한 마타누스카빙하물.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빙산처럼 높은 순백의 빙벽 앞에 서니 꽤 차가운 바람이 몰려든다. 수 만 년 동안 켜켜이 쌓은 만년설의 장대함에 위압감마저 든다. 놀라운 자연의 감동이다. 지구 온난화로 이 멋진 마타누스카빙하도 숨이 멎는 날이 올 것이란 생각에 잠시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빙벽이 만들어준 쉼터도 있다. 빙벽의 세상으로 들어오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명상의 시간을 즐겨도 좋을 만큼 춥지도 않다. 빙하들이 녹아서 만든 빙하호수에 비추인 빙하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알프스의 산자락을 연상케 한다. 머물고 싶다. 빛까지 아름다운 반영에 더해진다. 황홀하게 아름답다.

빙하 탐험의 시간이 끝났는지 아이젠 박스가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장엄한 마타누스카빙하를 느끼기엔 투어시간이 짧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더 깊은 빙하 계곡으로 가겠지만 비용을 간과할 수 없으니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나에겐 항상 숙제이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사진 한 장을 들고 지구의 온난화로 마타누스카빙하가 후퇴하고 있음을 자세히 알려준다. 주차장도 1960년대엔 빙하가 가득했었던 곳이라고 한다. 

에지 네이처 트레일 맵.
에지 네이처 트레일 맵.

빙하가 계속 녹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빙하가 너무 빨리 후퇴해 더 이상 빙하를 볼 수 없기도 하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이다. 알래스카의 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여행했던 8월 한 달 내내 매일 비가 계속되는 이상 기후가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8월 중에 1~2주 정도만 비가 왔었다고 한다. 지구의 온난화뿐 아니라 폭우로 인해 빙하의 기반이 약해지고 깨지게 되면 빙하는 더욱 쉽게 녹고 언젠가는 실종될 수도 있다.  

알래스카 이전에 다녀왔던 아르헨티나와 뉴질랜드 빙하트레일과 비교하기는 좀 어렵다. 지역도 빙하 성격도 비용도 너무 다르다. 돈은 지불했지만 빙하 위를 걷고 만지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타누스카빙하는 알래스카가 제공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 주었다. 차갑고 푸른 마타누스카빙하의 아름다움은 잊지 못할 소중한 풍광이다.

연일 계속되는 비가 잠시 소강상태라서 마타누스카빙하투어에 왔는데 투어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비가 쏟아진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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