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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모로코 거지가 당당하게 돈 달라했던 이유

정갑수
  • 입력 2023.02.28 15:17
  • 수정 2023.03.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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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스무 번째 이야기]
스페인 타리파~모로코 탕헤르~라바트~카사블랑카~사피~에사우이라

대서양 해안가 절벽에서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대서양 해안가 절벽에서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스페인 타리파에서 모로코 탕헤르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알헤시라스에 있는 에이전시에 들러 왕복 페리 티켓을 끊는다. 그라나다를 떠나면서 날씨가 안 좋아지더니 타리파에는 거센 바람과 함께 우박이 쏟아진다. 이 날씨에 배가 출항할 수 있을지 염려됐지만, 다행히 파도가 세지 않고 지브롤터 해협의 폭이 좁아서 정시에 페리가 떠난다. 비수기라 그런지 모로코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차도 몇 대 없다. 배 안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간단히 입국도장을 받는다. 배 멀미를 할 새도 없이 지중해의 푸른 파도를 가르며 40분 만에 탕헤르에 도착한다. 이제는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 대륙에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모로코 탕헤르에 도착하니 비가 더욱 거세진다. 항구의 세관에서는 꽤 까다롭게 짐을 체크하고 차량 전체를 X선으로 검사한다. 항구안의 보험회사에서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고 항구 밖으로 나온다. 차를 적당한데 세우고 핸드폰 가게를 찾으려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묻는다. 유심을 구입한다고 했더니 바로 근처의 핸드폰 가게로 데려다준다. 가격이 안 맞아 다른 곳으로 가려니 또 따라 붙어서 지근댄다. 아무래도 돈을 요구할 것 같아 매몰차게 거절한다. 비가 계속 오는데다 강풍까지 불어 우산대가 망가진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지리도 모르는 채 이곳저곳을 헤매다 겨우 한 군데 발견한다. 10기가바이트에 100디르함(10유로)하니 값이 만만치 않다. 모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조금 넘으니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우리나라 유심 가격으로 환산하면 10기가바이트에 100유로 하는 셈이니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안 되면 구글 길 찾기도 안 되니 어쩔 수없이 구입한다. 

모로코 탕헤르 항구 근처의 모습,남부 유럽의 도시 같다
모로코 탕헤르 항구 근처의 모습,남부 유럽의 도시 같다

핸드폰 가게에서 유심을 구입하고 저녁 무렵 차박지를 찾아다니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북킹 닷컴으로 할인 폭이 큰 호텔에 들어간다. 차를 주차시키기 위해 어쩔 수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호텔 규모만 엄청나게 컸지 주차장은 겨우 차 몇 대를 댈 공간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로코의 호텔은 대부분 주차장이 없다. 그냥 길 가에 세워놓는 대신 가이드들이 있어 10디르함(1,300원) 정도 주면 해결된다고 한다. 로마와 프랑스에서 차량이 수난을 겪은 이후로 도시에 주차할 때면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

‘이슬람=아랍’ 아니다

영어로 탠지어로 불리는 탕헤르는 19세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이슬람의 구시가지와 유럽인들이 건설한 신시가지로 나뉘어 이슬람과 유럽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매력적인 곳이다. 또한 탕헤르는 파울루 코엘류의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배경이 되었고, 1300년대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이며, ‘본 시리즈’ 중 <본 얼티메이텀>의 촬영지기도 하다.

지브롤터 해협의 대서양 입구에 있는 전망대
지브롤터 해협의 대서양 입구에 있는 전망대
모로코 해변가 근처의 노란색 꽃밭,한 겨울인데도 꽃이 만발하다
모로코 해변가 근처의 노란색 꽃밭,한 겨울인데도 꽃이 만발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매력에 한눈 팔 겨를은 없다. 운전자들은 틈만 나면 새치기를 하고 오토바이와 차들이 뒤엉킨 데다 사람들의 무단 횡단이 줄 잇는다. 그리고 거리에는 노숙자와 거지들이 많다. 또 어디를 가나 어른 아이 없이 돈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를 거지근성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에 따르면 현세에서의 모든 선행은 최후의 심판일, 즉 하느님 앞에 불려갔을 때 판단 자료가 된다. 살아 있을 때 베푼 선악의 크고 작음에 따라 천국에 들어가거나 지옥에 떨어진다는 게 이슬람의 기본적 구원관이다. 따라서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나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번 기회에 이슬람교와 아랍 문화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봤다. 먼저 느낀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이해도는 OECD 평균은커녕 제3세계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이슬람 인구는 15억 명이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또한 국제연합 가입국 중 57개가 이슬람 국가로 등록돼 있다. ‘이슬람=아랍’ 등식 역시 이슬람 문화를 둘러싼 대표적 오해다. 일부다처, 여성할례, 명예살인, 폭력성, 여성차별 등은 사실 이슬람 종교의 문제라기보다 오아시스 사회의 남성 중심 가부장적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문제다. 이슬람 세계에서 아랍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25% 정도이다. 나머지 이슬람 인구의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 전역도 이슬람권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중국에 분포한 무슬림 인구도 5,000만 명 이상이다. 아시아 대표 종교를 이슬람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카사블랑카 근처의 해변가에는 저녁때 연인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카사블랑카 근처의 해변가에는 저녁때 연인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가장 유사한 종교다.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섬기는 점이나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예수를 선지자 중의 하나이며 신격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이 기독교와 다르다. 이슬람교에선 무함마드를 아담과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 이은 마지막 예언자로 본다. 무슬림들은 알라(하느님)에게 절대 복종하여 내면의 평온과 지상의 평화를 얻는다. 하느님과의 직접적 관계를 통해 선행을 쌓아가는 과정, 즉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와 한 달간의 단식 그리고 순수입의 2.5%를 가난한 사람과 나누기, 평생에 한 번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의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모로코 사우나에선 속옷을 벗지 말 것

모로코에는 러시아나 튀르키예처럼 ‘하맘’이라는 사우나가 있다. 아랍 지역에서는 알라를 뵙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습관이 있어 목욕탕이 발달했다.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동네 목욕탕에 외국인이 들어와서 신기한 모양이다. 그런데 주섬주섬 옷을 벗으며 주위를 보니 모두 팬티를 입고 있다.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팬티를 입고 있다. 팬티까지 벗었으면 웃음거리가 될 뻔 했다. 탈의실에는 옷장과 신발장이 없다. 

노인들이 나를 보고 있다가 카운터로 가라고 한다. 카운터 직원이 물통 두 개와 바가지 한 개를 준다. 물통 두 개는 각각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받아서 사용하면 된다. 안에 들어가면 가운데 대리석이 있고 주위에는 물이 나오는 세면대와 도구들이 있다. 세면대는 물이 계속 흐르는데, 이슬람 문화에서 고여 있는 물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증기탕이 있어 이곳에서 때를 불린 다음 대리석 위로 올라가서 때를 밀거나 마사지를 받는다. 노인이 와서 때를 밀겠냐고 묻는다. 바닥에 매트 한 장 깔고 누워서 민다. 영화에서 보는 터키탕 이미지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혼자서 샤워만 하다가 제대로 목욕을 하니 개운하다. 이제는 도시에 갈 때마다 사우나를 이용하지 않을까 싶다.

카사블랑카 하산 2세 모스크의 미나렛은 210미터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카사블랑카 하산 2세 모스크의 미나렛은 210미터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 해안가를 따라 내려간다. 탕헤르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다.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으로 언덕 위에 많은 집들이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다. 모로코의 실제 수도는 라바트이지만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는 카사블랑카다. 해안가 바다 위에 기둥을 세워 건축한 하산 2세 모스크는 내부에 10만 명 이상의 신도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며, 210m 높이의 미나렛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곳은 1942년 제작된 <카사블랑카>와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메디나로 가는 길목은 유럽과 비슷하게 건물들이 솟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예전 모습이 보존된 일종의 구시가지인 메디나는 모로코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규모도 작고 볼 게 별로 없다. 메디나에서는 전통 시장처럼 과일과 채소, 온갖 종류의 생활용품을 파는데 무척 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백년초라고 부르는 선인장 열매는 생긴 것처럼 별로 맛이 없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계속 먹게 된다. 선인장 껍질은 초록색인데 속은 노랗다. 즙이 많고 거의 씨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씨는 뱉지 않고 통째로 먹는다.

에사우이라 근처의 해안가 절벽에서 차박 중이다
에사우이라 근처의 해안가 절벽에서 차박 중이다

모로코 한 줄 평 “요술양탄자”

해안가 근처에서 오랫동안 차박하면서 사람들이 고기 잡는 방법을 유심히 본다. 먼저 돈 있는 사람은 조그만 자기 배를 가지고 멀리 나가서 고기를 잡는다. 두 번째 부류는 타이어를 가지고 해안가를 벗어나 낚시를 한다. 세 번째 부류는 스노클링 장비를 가지고 해안가 근처에서 자맥질을 하면서 소라, 전복을 채취한다. 네 번째 부류는 해안가 절벽에서 전형적인 낚시를 한다. 마지막 부류는 긴 갈대나무 끝에 문어 다리를 꿰고 날카로운 낚시 바늘을 달아서 고기를 잡는다. 여기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돈벌이 방법에 극명한 차이를 보여 보는 모습에 마음이 씁쓸하다.

사피에 있는 국립 도자기 박물관
사피에 있는 국립 도자기 박물관
사피 국립 도자기 박물관의 정원,빨간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사피 국립 도자기 박물관의 정원,빨간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에사우이라 해변가,한 겨울에도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에사우이라 해변가,한 겨울에도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안가 근처에는 바닷가와 절벽이 있어 경치가 좋지만 들어가는 길은 모래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서사하라 근처의 에사우이라에서 차박지를 찾아 헤매다 모래사장에 바퀴가 빠진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일을 직접 겪게 되니 당황하여 어설프게 탈출을 시도하다 바퀴가 더 깊이 빠졌다. 뒷바퀴의 모래를 파내고 주위에 있던 돌을 주워서 채우고 다시 탈출을 시도하는데 바퀴가 헛돌면서 점점 더 깊이 빠져버린다. 따가운 햇볕 아래 땀을 흘리며 낑낑거리고 있는데 마침 근처를 지나던 사람이 다가와 도와준다. 열심히 모래를 파내고 돌을 깔아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차는 오히려 범퍼가 모래에 닿을 정도로 더 빠진다. 뒷바퀴의 타이어 바람을 빼고 시도하지만 또 실패다. 사륜구동이라고 모랫길을 통과할 때의 호기롭던 기분은 사라지고 점점 더 빠져가는 뒷바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후회와 걱정도 그만큼 늘어간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모래와 씨름을 하고 있는 데 마침 구세주처럼 사륜구동 픽업 차량이 나타난다. 그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차 뒤로 돌아와서 밧줄을 꺼내 차와 연결하고 당겨서 끌어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차가 끌려나온다. “슈크람, 슈크람(고맙습니다)”을 연발하며 도와주던 사람과 픽업 차량 운전자에게 100디르함씩 사례를 한다. 벌써 해는 저물어 해변가 노을이 빨갛게 변하고 태양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무식한 주인을 잘못 만나 차가 계속 고생한다.

에사우이라에 있는 메디나의 거리,메디나는 도시의 구시가지라고 보면 된다
에사우이라에 있는 메디나의 거리,메디나는 도시의 구시가지라고 보면 된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매력적인 나라다. 지중해 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유럽과 맞닿아 있고 대서양쪽은 가는 곳마다 해변이 수km씩 펼쳐져 있다. 그리고 중부에는 아틀라스 산맥이 있어 4000m 넘는 산이 있어 한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고, 남부에는 사하라 사막이 있는 곳이 바로 모로코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으면서 남부 유럽에 온 것 같은 분위기의 도시와 드넓은 평원이 있다. 그런가 하면 황량한 사막과 오아시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 고풍스러운 모로코 특유의 성채와 미로 같은 옛 도시의 골목들이 있다. 모로코는 이슬람교와 베르베르족의 신비에 가득 차 있어 마치 신화와 현실 사이에 떠 있는 요술 양탄자와도 같은 나라다.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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