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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프랑스 남부 한낮 대로변서 태양광 패널을 도둑맞다

정갑수
  • 입력 2023.02.13 13:19
  • 수정 2023.02.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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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밀라노~니스~칸~모나코~엑상프로방스~마르세이유~아를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들을 운하와 다리로 연결해서 만든 물의 도시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들을 운하와 다리로 연결해서 만든 물의 도시다

후배와 3박 4일 동안 피렌체를 관광한 뒤 베네치아로 향한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까지 차로 약 3시간 거리로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 공항에서 후배 와이프를 만나서 기차역까지 배웅한다. 후배는 와이프와 나폴리, 로마를 관광할 계획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헤어지자니 짠한 감정이 앞선다. 오토 캠핑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베네치아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좁은 골목길에는 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 운하를 흐르는 물은 희뿌연 색으로 온난화와 더불어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베네치아의 속살을 보는 것 같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의 중심도시로 과거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명이기도 하다. 흔히 베니스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영어식 발음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육지 쪽의 신도시에 살고 있으며 구 도시는 관광지다. 구 도시 내부에는 자동차도로가 없으며 대신 곤돌라와 수상택시가 운행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있는 잭슨 폴록의 작품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있는 잭슨 폴록의 작품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조르조네의폭풍우,1508년의 작품으로 최초의 풍경화라고할수있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조르조네의폭풍우,1508년의 작품으로 최초의 풍경화라고할수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베네치아의 대표적인화가 틴토레토의 '성 마가의 기적'이란 작품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베네치아의 대표적인화가 틴토레토의 '성 마가의 기적'이란 작품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베네치아는 5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육지로부터 도망친 사람들은 석호와 늪지대에 말뚝을 촘촘히 박고 그 위에 석판을 깔고 벽돌을 쌓아 집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118개의 섬을 운하와 다리로 연결된 베네치아라는 물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과 나무가 필요했는지는 17세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늪지대에 4m 높이의 나무 말뚝 110만개를 촘촘히 박았으며, 기초 작업을 하는 데만 2년 2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돌이나 시멘트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지만 물속에서 공기와 접촉이 없으면 썩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도시의 노후화로 인해 매년 몇 cm씩 침수되고 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산마르코 성당뿐만 아니라 모든 집들이 물에 잠긴다. 

한편 베네치아 인구는 갈수록 줄어 구 시가지엔 단 6만 명만 산다. 반면 관광객 수는 매년 3천만 명에 달한다. 베네치아는 기후 온난화와 인간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베네치아는 매년 3천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매년 3천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베네치아의 수상택시
베네치아의 수상택시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프랑스의 진주 멍똥을 아시나요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 북부를 가로질러 밀라노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 파도바와 베로나를 경유하지만, 초등학교 동창 두 명을 밀라노 공항에서 만나기로 해서 계속 직진한다. 이탈리아는 긴 장화처럼 생겨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지만 동서로는 300km가 채 안 된다. 세계일주를 시작한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같이 여행할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만난 친구들의 가방 속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들로 가득했다. 앞으로 3개월 정도의 먹거리는 확보했으니 건강과 안전에만 조심하면 될 것같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에서 차유리가 깨졌다는 소식을 듣고 차유리 가림막이를 가져온 게 무척 힘이 됐다. 

한 친구는 요리를 잘해서 그동안 못 먹었던 한국 요리를 저녁때마다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또 한 명은 대인 관계가 좋아서 언제 어디서든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해결하는 친구였다. 사실 그동안 혼자 여행하다보니 운전하면서 지도 검색하고 때가 되면 식사하거나 하루 머물 장소를 찾아 헤매는 등 일인 삼역을 하다 보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여행한다는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들 3인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프랑스 멍똥의 해변가
프랑스 멍똥의 해변가

제노바를 거쳐 프랑스로 넘어가는 국경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기만 덩그러니 있을 뿐 어디에도 국경의 흔적은 없다. 유럽 연합EU의 실체를 목격하는 순간이다. 이탈리아에서 수십 개의 터널을 지나 지중해 쪽으로 자동차를 몰다보면 구불구불한 해안 고속도로가 나온다. 이 해안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관광지 ‘리비에라’인데, 이곳을 지나면 프랑스의 진주라는 멍똥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프랑스의 국경 도시 멍똥은 지중해의 해변과 가파른 산의 절경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겨울에도 영상 1도를 웃도는 따뜻한 도시로 곳곳에 레몬나무가 가득한 레몬의 도시로 유명하다. 또한 해안의 끝자락에 있는 장 콕토 박물관은 이곳이 문화의 도시임을 말해준다. 저녁 무렵 멍똥의 산꼭대기에 있는 오토 캠핑장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니스는 한때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양쪽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니스의 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닌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약 7km의 길이를 가진 니스의 해변가는 화려한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자리잡고 있다. 마르크 샤갈 미술관은 니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샤갈이 창세기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프랑스 정부에 기부해 문을 연 미술관이다. 17점의 연작들은 샤갈 특유의 파스텔 톤으로 화면을 양분한 빨간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니스에 있는 샤갈 미술관에 있는 창세기 이야기 중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림
니스에 있는 샤갈 미술관에 있는 창세기 이야기 중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림
니스에 있는 샤갈 미술관 내부의 모습
니스에 있는 샤갈 미술관 내부의 모습

백주대낮에 태양광 패널을 뜯어가다니

샤갈의 그림에 취해 주차장에 돌아와 차를 보니 뭔가 허전하다. 차의 천장에 붙어있는 태양광 패널이 뜯겨져 나간 것이다! 그것도 한낮 백주 대로변에서 일어난 일이다! 유럽의 대도시는 자다가 코도 베어간다더니... 계속되는 차의 수난이다. 아마도 유럽에서 난민들로 골치 아프다는데, 이들로 인해 치안 문제가 심각해진 것 같다. 한동안 어이가 없어 망연자실해 있는데 그나마 친구들이 있어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안 좋은 추억을 남기고 차는 계속 남프랑스 해변을 달린다.

흔히 프랑스 남부는 일 년 중 360일이 맑은 날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남부의 파리라고 불리는 엑상프로방스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현지인들은 엑상프로방스를 ‘엑스Aix’라고 부르는데, 엑스는 라틴어로 물이라는 뜻의 ‘아쿠아Aqua’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래서 이 도시는 ‘프로방스에서 물이 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지방이지만 도시적인 느낌이 난다. 

니스에 있는 앙리 마티스 미술관
니스에 있는 앙리 마티스 미술관
반 고흐가 자신의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로 담은 아를의 카페.
반 고흐가 자신의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로 담은 아를의 카페.

 

이곳에는 현대 미술의 문을 연 세잔의 화실인 세잔 스튜디오가 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한번 들러봐야 할 곳이다. 여기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반 고흐가 말년을 보낸 아를이라는 도시가 있다. 아를에 정착한 뒤부터 죽기 전까지 약 2년 반 정도, 약 300점의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로 심신의 안정을 찾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한때 고흐가 다니면서 <밤의 카페 테라스>라는 작품으로 남긴 카페도 있다.

니스와 엑상프로방스의 중간에 있는 베르동 협곡은 유럽에서 가장 큰 협곡으로 길이가 50km에 달한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협곡으로 니스에서 산길을 따라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베르동 협곡은 1960년대 늘어나는 인구에 대비해 식수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댐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고요한 평원에 에메랄드빛의 물이 차오르면서 거대한 인공 호수가 만들어졌다. 이 호수에는 석회암 성분이 녹아 있어서 날씨나 물의 양에 따라 코발트, 비치, 녹색 등 다양한 색의 아름다운 물빛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겨울에 차로 협곡을 넘어가는 고갯길은 응달에 눈이 쌓여 있어서 몹시 고생했다. 어떤 곳은 수직으로 천 미터 낭떠러지가 있어서 운전하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마르세이유에 있는 유럽지중해 박물관
마르세이유에 있는 유럽지중해 박물관

미쉘린 3스타 부야베스보다 속초 해물탕이 그립다

마르세이유 시내로 들어선다. 오래 된 도시답게 길이 좁고 복잡하다. 지하 주차장서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불과 100m도 채 안되는데, ‘미스트랄’로 알려진 바람이 너무 거세 앞으로 나아가기도 벅차다. 미스트랄은 겨울과 봄에 론강에서 불어오는 춥고 거센 바람이다. 그 다음으로 센 바람이 모로코 사막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으로 뜨거운 바람이다. 이제 미스트랄 바람을 맞아봤으니 모로코 사막 투어를 할 때 불어오는 바람도 경험해봐야겠다. 물론 이제까지 맞아 본 바람 중에 가장 세고 무서웠던 바람은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할 때 8000m 부근에서 맞은 ‘Z기류’일 것이다. 배낭을 메고도 날려갈 정도로 위력이 센 바람이라 바람이 그칠 때까지 바짝 엎드려 있어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르세이유의 대표적인요리 부야베스,우리의 해물탕과 비슷하다
마르세이유의 대표적인요리 부야베스,우리의 해물탕과 비슷하다

마르세이유는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오래된 도시로 연중 300일 이상 햇살로 가득한 항구다. 지중해 해변 도시로 해산물도 많은데, 특히 유명한 요리는 ‘부야베스’다. 일종의 생선 해물탕으로 이프 섬이 바라보이는 미쉘린 3스타인 레스토랑에서 거금을 주고 먹어 봤다. 그런데 속초에서 먹는 해물탕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프에 있는 성은 1524년 외국의 해상 침투를 막기 위한 방어기지로 건설되었는데, 17세기까지 수많은 정치범들을 가두는 악명 높은 감옥으로 시용되었다. 이프 섬은 알렉산드르 뒤마가 쓴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곳이다. 

미르세이유의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미르세이유의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마르세이유 하면 떠오르는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불렀던 ‘La Marseillaise’라는 프랑스 국가일 것이다. 구 항구에서 왼쪽으로 언덕길을 오르면 시가지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비잔틴 양식의 성당 꼭대기에는 금빛 찬란한 성모 마리아 동상과 내부에는 대리석과 모자이크 장식이 볼 만하다. 또한 마르세이유에서 남동쪽으로 20km 떨어진 깔랑끄 국립공원은 석회암이 만든 아름다운 절벽과 터키 블루색의 바닷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지중해의 해변을 따라 펼쳐진 바다를 보면 인간의 나약함과 인생의 무상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우주 공간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 위에 앉은 먼지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수소, 탄소, 질소, 산소 및 소량의 기타 원소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원소들은 모두 별이 폭발하면서 구름과 먼지로부터 생성된 것이다. 즉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방랑자들이다. 별에서 별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그러나 우리는 자연과 바다를 보면서 감탄하고 질문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특별한 별의 먼지로 만들어준다.

아를의 도시를 통과하는 론강
아를의 도시를 통과하는 론강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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