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열 번째 이야기

조지아의 바투미는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었다. 흑해Black Sea의 남동부에 있는 바투미는 아열대 기후로 파인애플부터 울창한 침엽수까지 자라는 따뜻한 곳이다. 처음에 흑해라는 이름만 듣고 시커먼 바다인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그 어떤 바다보다 맑고 푸르른 바다였다. 

바투미는 튀르키예 국경까지 약 2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여름이면 유럽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흑해 뒤쪽으로 코카서스 산맥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투미는 낮보다 밤이 매력적이다. 해질 무렵 흑해 속으로 잠기는 태양은 마치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이끄는 황금마차처럼 장열하다. 이윽고 밤이 찾아오면 바투미는 화려한 도시답게 흑해를 환하게 밝힌다.

점심을 먹고 튀르키예 국경으로 향한다. 가는 길목에 있는 고니오Gonio 요새를 들린다. 이곳은 1세기에 지어진 당시 로마의 가장 동쪽에 있던 요새다. 12사도 가운데 한 명인 성 마태오(Matthew, 마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이 실크로드의 중요한 요충지였겠지만, 성벽은 허물어지고 길에는 무성한 잡초만 우거져 있다.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쓸쓸한 요새다. 

고니오에서 차로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튀르키예 국경이 보인다. 짐 검사는 형식적이고 간단히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준다. 다만 차가 있는 사람들은 차량 등록을 하지 않으면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조지아로 넘어올 때는 여권과 동시에 차량 등록을 했다. 또 아르메니아는 여권 심사 후 건물 안에서 차량 등록을 하고, 국경을 통과한 후 마켓에서 자동차 보험을 가입해야 했다. 반면 튀르키예는 여권 심사 후 자동차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차량 등록을 하려면 자동차 보험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해변가 도로를 따라 3시간 정도 가면 튀르키예의 도시 트라브존Trabzon에 도착한다. 트라브존은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남동쪽 이란, 북동쪽 캅카스의 관문이었다.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과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잇는 길이다. 중세 시대의 동서 교역로는 크게 초원길, 사막길, 바닷길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초원길은 흑해 북동쪽, 러시아 카스피해와 아랄해, 카자흐스탄과 알타이산맥 남쪽에 이르는 유라시아 스텝의 초원 지대를 거쳐 한반도까지 이어진다. 그 옛날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가 초원길을 통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초원길을 통해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 등 여러 민족이 흥망을 반복했다. 그 후 16세기 중반 시베리아의 침엽수림대를 따라 흑룡강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초원길이 열리면서 동서 교류의 새로운 통로가 되었다.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운전해 온 길이 바로 그 길이며, 시베리아 철도가 지나는 길이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트라브존 시내에서 가장 높은 보즈테페Boztepe 언덕을 오르면 흑해의 해안선을 따라 지중해풍의 낮은 집들이 펼쳐진다. 트라브존에 있는 아야 소피아Hagia Sophia는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와 이름이 같지만 규모는 훨씬 작고 아담하다. 아폴로 신전의 잔해 위에 기독교 성당이 세워졌고, 오스만 튀르크 시절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슬람 사원 안에는 8~9세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린 기독교 벽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튀르키예는 우리나라를 ‘피로 맺은 형제의 나라’로 부른다. 한국 전쟁 당시 터키(옛날 명칭)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고교생들이 형제의 나라에 전쟁이 발발했는데, 왜 지원군을 보내지 않느냐면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에 터키 정부가 지원병을 모집하자 순식간에 파병 인원을 넘어섰다. 왜 터키 젊은이들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먼 이국의 전쟁에 앞 다투어 지원했을까? 그들은 한국이 피로 맺은 형제의 나라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터키 역사 교과서에는 그들의 조상으로 6~7세기 몽골 일대에서 크게 번성했던 돌궐과 고구려의 관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트라브존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나를 보는 눈이 이방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왠지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떤 때는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할 때 가슴에 손을 얹는 우정의 제스쳐를 취한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는 행위는 자신의 진실함과 친밀감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한다. 나도 맛있게 먹었다는 표정으로 악수를 청한다.

튀르키예로 들어오면서 갑자기 차의 엔진 경고등이 켜졌다. 차의 보닛조차 열 줄 모르는 나에게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온갖 걱정과 불안이 교차한다. 구글로 검색해보니 다행히 트라브존에 쌍용자동차 대리점이 있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만km 이상 운전하고 왔다고 하니 엄청 반가워한다.

“엔진 경고등이 들어왔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잠깐 기다리세요. 저희 정비원이 점검해드리겠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조지아, 튀르키예는 대리점과 서비스센터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직원이 대리점의 모든 사람들을 소개시켜준다. 마치 우리나라의 쌍용자동차 본사에서 파견 나온 느낌이다. 그리고 튀르키예 커피를 주면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단순히 예의상 묻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이웃집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정비원이 아무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한숨 놓인다. 고맙다고 하자 이번에는 차를 훑어보더니 세차까지 무료로 해주겠단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을까.

자동차 엔진 경고등이 켜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차의 안전과 직결된 경고 외에도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경고등이 대부분이란다. 예를 들면 시동을 켜고 주유한다든지 에어필터 교체시기를 초과하거나 촉매변환장치 등 대기오염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 때 이후로 다시 엔진 경고등이 들어 왔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운전한다.

아찔한 절벽 위 수멜라 수도원

트라브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의 수멜라 수도원Sumela Monastery은 약 1,600년의 역사를 가졌다. 해발 1,320m 높이의 가파른 절벽 위에 있다. 한때 800명의 수도사들이 지냈다고 한다. 수도원은 385년 아테네의 두 사제에 의해 세워졌다. 이후 몇 차례 재건축을 거쳐 13세기에 완성되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본당은 5층 구조로 72개의 방이 있는데, 예배당과 기숙사, 부엌, 도서관 등 여러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좁은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구석구석을 다니는 데 아찔하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수도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마지막 마을에서 협곡을 따라 차로 약 30분 올라가야 하는데다 수도원 자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서 그 옛날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가장 궁금한 건 먹는 문제다. 주위에는 산에서 뻗은 가파른 비탈과 험준한 계곡,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경작할 땅이 없다. 수도원은 터키 정부가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2곳 중의 하나다. 교회당 전체를 덮고 있는 프레스코Fresco 벽화는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은 물론 선명한 색감이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다. 프레스코 기법이란 회반죽벽에 석회가 건조되기 전에 수용성 물감으로 채색한 그림을 말한다. 바탕이 뒤틀리거나 변형되면 그림이 손상되기 때문에 두꺼운 벽에만 그릴 수 있다. 또한 습기에 약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중부처럼 건조한 기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다. 

르네상스 때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프레스코화로 대결을 벌인 적이 있다. 다빈치의 그림은 건조 과정에서 기름이 녹아서 그림이 녹아내렸고, 미켈란젤로는 로마 교황의 초청으로 떠나버리면서 이 대결은 흐지부지되었다.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집무실인 서명의 방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그림이 있다. 라파엘로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릴 당시 미켈란젤로 역시 바로 옆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었다. 산골짜기,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신앙을 위해 산 속에 이처럼 거대한 건물을 짓다니 새삼 신앙의 위대한 힘이 느껴진다. 산 아래로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마저 감동스럽다. 튀르키예는 400년 이상 오스만 제국이었으며,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된 이후에도 인구의 97%가 무슬림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기독교 문명의 수도원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열린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 즐기는 5가지 팁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아나톨리아 고원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지역으로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이었다. 또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로마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카파도키아는 괴레메, 우치히사르, 위르굽, 네브쉐히르, 아바노스, 카이세리 같은 도시를 모두 통칭하는 지역이다. 괴레메라는 마을 이름은 ‘보이지 않는 곳’이란 뜻이다. 수천만년 전 이곳은 화산 폭발이 일어나던 지역이었다. 마그마 분출로 만들어진 바위 주위로 화산 분진이 내려 앉아 응회암이 굳어져서 생긴 지형인데, 응회암은 경도가 약하기 때문에 비바람에 쉽게 깎여서 버섯바위들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는 동서로 400km, 남북으로 250km에 달한다. “이곳은 지구 안의 또 다른 행성이다”라고 할 정도로 특이한 지형이다. 전형적인 스텝 기후로 사막 다음으로 건조하다. 여름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지만,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덥다. 반대로 겨울에는 전형적인 우기로 해가 일찍 지면서 가끔 눈이 내린다. 스타워즈의 촬영장소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촬영은 안 했으며 단지 배경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파샤바 밸리에는 스머프 마을이 있다.

카파도키아를 즐기기 위한 5가지 팁이 있다. 카파도키아는 수 세기 동안 지하 도시가 형성됐다. 약 2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지하 도시는 ‘깊은 우물’이란 뜻의 데린쿠유Derinkuyu 마을에 있는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깊이 85m, 지하 7층 규모로 한 농부가 도망간 닭을 쫓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데린쿠유는 2만 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학교, 식당, 예배당, 창고, 농장, 감옥도 있었다고 한다.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동굴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말을 타고 바라보는 레드 밸리의 석양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으흘라라 계곡은 16km 길이로 산책은 물론 화성암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의 멋있는 바위를 바라보며 계곡 옆에서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카파도키아에는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건축물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서는 이곳에 거주했던 아시리아, 히타이트,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다양한 민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는 살구 스튜와 제르델리 라이스(샤프란 쌀 요리), 테스티 케밥(항아리 케밥) 등이 유명하다. 테스티 케밥은 야채와 고기를 빵으로 싼 다음 작은 항아리에 넣고 탄두르(전통 오븐)에서 굽는 요리로 먹기 전에 항아리 입구를 깨는 퍼포먼스가 있다. 와인도 유명하다. 특히 핫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마치 프랑스 핫 와인인 뱅쇼처럼 지하도시에 살면서 따뜻한 술을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를 모두 즐기려면 벌룬 투어, 그린 투어, 레드 투어를 하면 된다. 벌룬 투어는 괴레메에서 아침 5시에 출발하는 열기구를 타는 코스로 약 1시간 동안 피존 밸리, 러브 밸리, 파사바 밸리, 요정의 굴뚝 등 유명한 암석 지대를 지나가며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벌룬 투어는 열기구에 타는 인원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열기구를 타기 위해서는 아침에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내가 오기 전후로 1주일 동안 날씨가 안 좋아서 뜨지 않았다. 앞으로 며칠 동안 계속 날씨가 안 좋아지고, 그 이후는 비가 온다고 한다. 아마 본격적으로 겨울 우기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쉽지만 이 지구상에 또 다른 행성을 보기 위해서는 다음을 기약해야 하나보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 한국인 여대생은 날씨가 나빠 열기구가 뜨지 못하자 울상이다. 열기구를 타기 위해 계속 남아 있을 건지 고민 중이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는 것이 일생의 버킷 리스트인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린 투어는 괴레메 마을 남쪽 지역인 괴레메 파노라마, 데린쿠유, 셀리메 수도원, 으흘라라 계곡, 피죤 밸리를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는 투어다. 레드투어는 괴레메 마을 북쪽 지역을 도는 코스로 러브 밸리, 우치히사르 성, 괴레메 야외 박물관, 아바노스 도자기 마을, 데브란트 계곡을 관광할 수 있다.

튀르키예에선 알람이 필요 없다

이슬람교의 다섯 가지 의무 중 하나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 시간은 해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첫 번째 기도 시간은 일출 바로 직전에, 두 번째는 정오에, 세 번째는 자신의 그림자와 키가 동일해지는 시간에, 네 번째는 일몰에, 다섯 번째는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하늘이 컴컴해지는 시간에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기도 시간이 되면 이슬람 사원에서 ‘아잔’이라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통해 기도 시간의 시작을 알리고, 이에 따라 모든 상점과 식당은 약 30분간 문을 닫는다. 

나도 옛날부터 다섯 개의 알람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각각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과 낮잠 시간, 마지막으로 운동하는 시간이다. 물론 이슬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알람이다. 튀르키예에서는 어디서나 확성기를 통해 예배 시간을 알려주므로 알람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고,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더욱 엄숙해지고 경건해진다.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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