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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사람 없는 풍경은 공허한 느낌을 준다

월간산
  • 입력 2006.08.04 17:26
  • 수정 2006.08.0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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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외나로도 곰솔 해안·염포 몽돌해안·봉래산 삼나무숲

태풍 에위니아가 오고 있지만 아직 문제없다는 예보 속에 길을 나선다. 서해로 갈수록 비가 흩뿌렸으나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만큼 나로도는 마음을 사로잡았다. 방향은 정남향. 남도 땅에 들면 힘자랑하지 말라는 벌교를 거쳐 예부터 장사가 많이 나왔다는 고흥을 지나 나로도 연륙교를 건넌다. 직선도로가 늘어난 덕에 많이 가까워졌다 해도 남해의 끝은 멀었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반이 넘는다고 생각하면 더 없이 지루하지만 떠남 자체가 여행이라면 언제나 즐거움의 몫은 줄지 않는다.

서편으로 해가 기울어갈 때 비로소 외나로도에 도착한다. 그곳에 펼쳐지는 보들 바다. 그리고 꼭두여 등의 아름다운 이름들이 흥미롭지만, 사실 요즘 같은 빠른 세상에 여기도 별 수 없으리란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외나로도 분소의 권유로 인해 그런 생각은 긍정적으로 기울어졌다.

“너무 멀어! 아침에 온다던 사람들이 오후가 되면 오다가도 다시 발길을 돌려….”
지리산에만 20년 이상 근무하다가 이곳으로 온 김순완씨는 그렇게 먼 길을 탓하고 있지만 결코 이곳이 싫은 눈치가 아니다.

▲ 외초리 해안에서 바라본 기이한 바위섬 꼭두여.
▲ 외초리 해안에서 바라본 기이한 바위섬 꼭두여.

바다에서 보면 바람에 날리는 비단 같은 섬

묘한 느낌이 감도는 땅. 이름의 유래처럼 나로도는 바다에서 보면 바람에 날리는 비단 같다고 한다. ‘나로(羅老)’라는 이름은 영의정을 지낸 이건명의 유허비 후면에 명기되어 있으며, 정조 13년(1789)의 여지도서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예부터 불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라 섬이어서 나라도라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그냥 비단 같은 섬 나로도라 해도 문제 될 게 없겠다.

1970년대 초까지 나로도는 하루 500척이 넘는 대성황을 이루는 어업 전진기지였다. 이 작은 섬에 여수, 통영 등지의 배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주민들은 건립 중인 우주센터로 인해 이 지역이 희망의 땅이 될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기지가 완성되면 13번째로 우주선 발사국이 되며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로도는 유명한 관광지가 될 것이란 꿈을 사람들은 갖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농촌 총각들에게 착하고 예쁜 베트남 처녀를 중매한다는 현수막은 자꾸 눈길을 끈다.

▲ 곧고 건강한 모습의 삼나무.
▲ 곧고 건강한 모습의 삼나무.
나로도 해수욕장은 물러설 곳 없는 길 끝에 있었다. 분소 앞 바다를 가로막고 선 오래된 곰솔숲이 이곳의 첫 인상을 인상적으로 남겨주기에 충분했다. 여행용 캠핑카를 몰고 온 사람들이 솔향기를 맡으며 한적함을 즐기고 있었고, 숲 사이로 보이는 해변은 새소리가 묻히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바다와 소나무 사이에 선 일행들의 실루엣에서 문득 풍경과 사람은 주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풍경에서 안과 밖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가 떠올랐다. 사람 없는 풍경이 종종 공허한 느낌을 주는 것은 본래 모습을 잃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희미한 빛이 흔들리는 파도에 스러져갈 때. 선택의 여지없이 노을 지는 부둣가로 발길을 돌린다. 늘 카메라를 들이대는 상투적 풍경. 일몰. 은빛으로 빛났다가 금빛으로 바뀌는 해질녘 풍경은 언제나 눈을 현혹시킨다. 여명은 잿빛 하늘 속으로 묻혀 들어가고 해볼 도리 없이 해는 졌다. 작은 불빛 몇 개만이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카메라를 쥔 손이 자유로워진다. 순식간에 풍경은 익숙해지고 낯선 땅에서 안도감을 찾아낸다. 설사 내일 태풍이 온다 해도 저녁은 포근하다. 그리고 길에서 얻는 이 느낌은 늘 자유롭다.

아름다운 이름들이 생겨났을 그 옛날을 상상해 보다가 눈을 뜬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곰솔 사이로 보려했던 일출은 두터운 구름에 붉은 기운조차도 내지 못하고 날씨는 잔뜩 흐려 있다. 나로도 해수욕장을 떠나 배를 탈 수 있는 외초리 바닷가로 간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배는 벌써 대피하고 없다. 하는 수 없이 그곳의 작은 절벽이 있는 바위를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원추리와 나리가 분위기 있게 피어난 벼랑 너머로 기이한 바위섬 꼭두여가 그 모습을 온전히 보여준다.

곡식을 가는 맷돌의 손잡이를 이곳 사람들은 꼭두여라 부른다. 센 발음으로 꼭두녀라 하면 더 정감 있게 들렸다. 맷돌에 곡식을 갈기 위해 꼭두를 잡았는데, 그것이 쑥 빠져버린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나왔단다. 어쨌든 잿빛 하늘에 붙어 버린 바다와 타지도 못하는 배를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꼭 지금 상황에 꼭 맞는 듯하다.
▲ 몽돌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염포 해안.
▲ 몽돌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염포 해안.

배를 타고 보아야 할 기암괴석들. 부채바위, 사자바위, 카멜레온 바위, 부처님 바위 등을 찾아보는 그런 재미는 오늘 없다. 높은 파도가 일렁이고 남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자 금세 머리가 뜨거워졌다. 발길을 돌려 외초리를 넘어 몽돌해안이 있는 염포 해수욕장으로 간다.

구르륵 차르르르~. 적어도 수천 년 동안 염포의 돌들은 이런 소리를 내며 굴러왔다가 다시 굴러 내려가며 갈고 닦아졌다. 보석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몽돌은 그러나 사람들이 안방 또는 정원으로 옮겨가려는 욕구가 생기면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젠 해수욕장의 서편 해안 끝자락에까지 품을 팔아야 그 오래 된 자연의 소리를 들를 수 있다.

구르르륵 차르르~. 바닷물을 사이에 안고 몽돌이 부딪히는 묘한 탁음을 들으며 염포를 나온다. 그리고 태풍 에위니아를 피해 산으로 간다. 마지막 선택 봉래산(410m)이다. 중국의 진시왕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동방에 사신을 보냈다는 영산이 바로 봉래산(금강산을 칭함)이었다. 방장산(지리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봉래산은 동방의 삼신산으로 일컬어 왔다.

나로도의 봉래산은 금강산의 일부를 닮았고 불사약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그런 봉래산에 지금은 불사약 대신 삼나무가 심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시험림으로 조성된 높이 30m에 이르는 80년 이상 된 삼나무들은 외나로도의 보물이 되어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숲길을 걸으면 바다에서보다 더 깊은 호흡을 할 수 있다.


우주센터 생기는 바람에 용송은 승천해버려

▲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여 소나무로 변신했다는 봉래산의 용송. 2003년 태풍 매미 때 운명을 다했다고 한다.
▲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여 소나무로 변신했다는 봉래산의 용송. 2003년 태풍 매미 때 운명을 다했다고 한다.
삼나무숲의 산행 기점은 예내리 무선국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평탄한 오솔길을 약 30분 걸으면 나타난다. 3만여 그루의 편백나무와 함께 삼림욕장을 이룬 이곳에 이른 봄이면 눈을 뚫고 피어난다는 복수초 군락지가 형성된다.

봉래산 정상에선 당연히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이 펼쳐져야 하는데 오늘 조망은 제로에 가깝다. 날이 흐리지 않다면 후텁지근했을 바람마저 차갑게 느껴진다. 용처럼 뒤틀린 모습의 기이한 소나무가 100여 년간 봉래산 청석골에 살았는데 이런 바람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때 수명이 다했다. 이곳에 우주센터가 생기는 바람에 용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껍질 벗은 용송은 죽어서도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또 하늘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름답게 보여질 다도해를 상상으로 남겨두고 산을 내려온다. 불사약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봉래산이 있어 나로도는 다시 찾아올 곳으로 기억해 둔다.


외나로도의 촬영 요소들
봉래산 삼나무 군락과 나로도 해수욕장 곰솔


외나로도는 대상에 따라 촬영시기가 결정된다. 봉래산에 피어나는 복수초 군락을 찍으려면 3월 이른 봄이 시기이고, 바닷가의 기암들은 파란 하늘이 보이는 가을이 좋다. 나로도의 기암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비경을 볼 수 있다. 외나로도의 촬영요소는 봉래산의 삼나무 군락과 나로도 해수욕장의 수령 250년 이상 된 300여 그루의 곰솔이다. 소나무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어우러지는 일출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연륙교로 연결된 외나로도는 이제 오지라 할 수 없지만 작은 포구로 이루어진 마을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 주변에 자라나는 풀과 꽃 등 자연물들이 풍경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염포 해안의 몽돌도 쉽고 재미있는 사진의 소재다.

이밖에 고흥 최고봉 팔영산은 여덟 개의 아름다운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천등산, 운암산, 마복산 등도 500여m 높이를 지닌 산이지만 모두다 기암괴석이 있는 볼거리 있는 산으로 꼽힌다.

# 가는 길(서울 기점 승용차 기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천안-공주 간 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이후 광주를 거쳐 남해고속도로로 옮겨 탄다. 그러다가 주암 나들목으로 빠져나온다. 이곳에서 벌교로 이어지는 27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다시 15번 국도를 이용하여 고흥을 거쳐 외나로도로 간다. 나로도까지 연륙교를 이용하여 섬 끝까지 갈 수 있다.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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