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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한국 8경에 낙조까지 찍을 거리 수두룩

월간산
  • 입력 2007.07.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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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변산…오전엔 내변산 산행, 오후에 외변산 촬영 자연스러워

어느새 바람이 후덥지근해졌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픈 유혹이 일어나는 초여름이다. 하지만 언제나 날씨가 문제다. 특히 풍경을 찍을 경우 그렇다. 비 온 뒤를 기다리며 시간 싸움을 벌여도 성과는 미미할 뿐이다. 최상의 조건을 원하는 풍경 사진가들은 그래서 여름이 어렵다. 맑은 날을 보기 힘들다면 결국 방법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원경보다 근경으로, 능선보다는 계곡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무래도 성과가 있을 것이다.
사진을 위한 여행과 여행길에서 사진 찍기는 분명 다르지만, 과정의 즐거움이란 공통분모가 있다. 그래서 떠나는 마음은 설렐 수밖에 없다.
 
낮지만 힘이 있는 변산의 바위들 중에 관음봉(424m)이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낮지만 힘이 있는 변산의 바위들 중에 관음봉(424m)이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오늘의 행선지는 전라북도 부안의 명소 변산. 산과 바다가 조화롭게 어울리고 소박한 시골의 느낌이 남아 있는 곳이다. 변산을 탐구하기 위해 부안군 상서면 동림 마을을 베이스캠프로 정했다. 뜻밖에 잠자리를 얻게 된 동림 마을 영묘재는 솟을대문이 있는 전통 한옥이다.

“이리 오너라!”

대문을 들어가며 양반 흉내를 내보는 일행들은 유서 깊은 곳에 왔음을 실감한다. 동림 마을은 인조 26년(1648년)인 7세 때 소학을 배우고 실천하여‘소학판본’이라 칭송받은 담계 김서경이 자란 곳이다. 당시 판서 권대재와 의금부도사 김오랑은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조정에 천거한 바 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유생이 벼슬에 오르면 학업에 방해가 된다며 애써 사양한 후 스스로 향시를 치러 장원급제 했다. 김서경의 25세 때 일화다.

반계수록으로 유명했던 실학자 유형원은 그런 김서경이 원대한 그릇이 되리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서경은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그의 짧은 인생를 기리는 추모비가 영묘재 대문 옆에 서 있다.

동림 마을은 몇 채의 가옥과 송림이 어울려 있긴 해도 특별히 아름답지는 않다. 그러나 낮고 편안한 개울의 뜻을 지닌 김서경의 호처럼 마음 푸근한 마을임엔 틀림없다.
이육사는 청포도에서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고향을 그렸지만, 동림 마을엔 청포도를 연상케 하는 청매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산과 바다, 계곡과 해수욕장 조화 이뤄

단풍은 계절에 상관없이 역광을 받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단풍은 계절에 상관없이 역광을 받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호남정맥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내려오다가 영취산에서 서해로 방향을 틀면서 생겨난 산줄기다. 꿈틀대는 정맥의 기운은 내장산에 이르러 방향을 급선회하여 남해로 몸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강이 바로 섬진강과 영산강이다. 내장산은 다시 목포를 향해 한 줄기를 내리고 또 하나를 서해바다 변산으로 흘렸다. 산경표에는 대간과의 연계성보다 호남정맥의 끝자락에 홀로 솟아 오른 봉우리로 변산이 묘사되고 있다.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리며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천관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혀온 변산은 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고운 자태를 보존하고 있다. 

조선의 예언서 정감록에는 전쟁이 일어나도 화를 면할 십승지의 하나로 부안을 꼽았다. 또한 택리지에는 소금과 고기가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서 농사짓기 좋으며,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넉넉한 변산이라 했다. 의상봉, 관음봉, 지장봉, 원효굴 등 지명 또한 다분히 불교적이며 내소사, 개암사, 실상사, 청림사, 의상암, 등운사, 불사의방장, 선계사 등의 절들이 변산을 성지화하고 있다.

외변산의 명물인 채석강의 절경. 해식단애로 이루어진 경관이 장관이다.
외변산의 명물인 채석강의 절경. 해식단애로 이루어진 경관이 장관이다.
변산은 계곡이 아름다운 남서부를 내변산(內邊山),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변산으로 나눈다. 외변산에는 해식단애(海蝕斷崖)의 절경을 이루는 채석강(採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이 있고, 경사가 완만한 변산 해수욕장을 비롯한 고사포 해수욕장, 격포 해수욕장이 있다. 변산의 최고봉은 해발 508m 의상봉이다. 어디에 견줄만한 높이는 아니지만 한국 8경에 꼽힌 사실을 보더라도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내변산의 상징인 직소폭포.
내변산의 상징인 직소폭포.

등산객들은 보통 내변산 직소폭포를 기점으로 변산을 오른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내변산 산행은 오른다기보다 걷는다는 말이 어울린다. 정상으로 흐름이 이어지기보다 봉우리를 중심으로 원점으로 돌아오거나 고개 넘어 반대편으로 가는 식이기 때문이다. 트레킹 또는 하이킹처럼 수직의 동선이 아닌 수평적 패턴이 편해지는 느낌의 근거일 것이다.

직소폭포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앞에선 의례적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대신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일이 최근에 달라진 풍속이다. 휴대폰의 출현으로 사진은 전 국민이 대화하듯이 즐기는 일상이 되었다.

초여름 변산에선 청매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초여름 변산에선 청매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은 발을 담그기 알맞은 깊이에 푸르른 여름빛을 띠고 있다. 어린 풀잎이 흔들리는 숲의 느낌이 싱그럽다. 나뭇잎 사이로 관음봉이 보였다. 불쑥 솟아오른 모습이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 바위와 숲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명산의 전제라면 변산은 그 점을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산이다.
  익숙한 모습보다 생소함에 더 마음 끌려
 
풀잎이 싱그러운 초여름 변산.
풀잎이 싱그러운 초여름 변산.

하지만 그렇다 해도 눈이 아찔할 정도로 맑은 날이 아니면 변산을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그런 날이 오지만 촬영에 적용시키기는 쉽지 않다. 보이는 만큼 찍을 수 있는 것이지만. 변산의 나지막한 높이는 오히려 특별한 사진을 찍기엔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하루에 경험하는 변산은 아무래도 제한이 있는 것이지만, 관음봉에서 세봉을 지나 가마소를 포기하더라도 내소사를 지나칠 순 없다. 발길을 돌려 그 곳을 향해 내려간다. 내소사는 서기 633년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절이다.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으며, 창건 당시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절은 소소래사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와서 세웠기 때문에 ‘내소(來蘇)’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원래 소래사(蘇來寺)였음을 알 수 있다. 관음봉은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여 보통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기도 한다. 변산 제일의 사찰 내소사는 창건된 지 1,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도량이다. 어찌 이야기 거리와 볼거리가 없겠는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
터널을 이루고 있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

그러나 사진가는 익숙함보다 생소함에 마음 끌릴 수밖에 없다. 애써 내소사를 피하는 것은 너무 잘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경내를 나와서 전나무 길로 접어든다. 편하고 아늑한 숲길.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 내소사에 올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변산을 새롭게 보아야 하는 숙제를 그대로 안고 길을 걸어 나온다. 아름다운 바위와 초록 숲이 어우러지는 풍광에 사진여행이 즐겁지만 그것을 넘어야 할 사진가의 눈은 아직도 미명에 멈추어 있다.

/ 글 · 사진 손재식 사진가

여름 변산 촬영가이드

변산은 산과 바다가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곳이다. 채석강과 적벽강 등 온갖 형태의 기암이 있고 월명암과 내소사, 직소폭포 등의 명소와 서해 낙조까지 찍을 거리가 두루두루 많다. 그러나 관광홍보용 사진처럼 찍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공식화된 장소와 알려진 포인트를 이용하여 비슷한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 온 뒤에 청명한 날씨를 만나거나 안개와 구름이 감도는 날을 만나는 행운이 따른다면 이런 고민은 적어질 것이다.

일단 잘 알려진 풍경을 충분히 검토하고 다르게 찍는 방법과 앵글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산의 촬영요소를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눌 때 오전엔 내변산 산행을 하고 오후엔 외변산으로 움직이는 게 자연스럽다. 촬영은 너무 여러 곳을 목표로 두지 말고 오전에 꼭 찍어야 할 장소와 오후에 한두 곳을 설정하는 게 좋다. 하루의 사진여행에서 정도 이상의 성과를 바라지 않는 것이 다양한 변산으로 접근하는 한 방법이다.


변산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 기준)

변산으로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경우 부안 나들목으로 빠져나온 후 부안읍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면 외변산의 채석강으로 이어진다. 또 한 방법은 부안읍에서 좌회전하여 2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영전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30번 국도를 이용하여 개암사와 내소사를 거쳐 채석강으로 간다.

부안에서 내변산으로 가려면 736번 지방도로를 타고 변산을 관통한다. 외길로 이어지는 도로상에 신행기점인 청림리와 내변산분소, 남여치 등이 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갈 경우 태인 나들목으로 나와서 신태인을 거쳐 부안으로 간다. 정읍으로 나올 경우엔 29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줄포 나들목을 지나쳐 30번 국도로 바꾸어 타고 내소사 방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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