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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활짝 핀 벚꽃, 파스텔톤 풍경 내려면

월간산
  • 입력 2007.05.15 09:11
  • 수정 2007.05.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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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길…망원렌즈로 부분만 당겨 찍는 것도 한 방법

남산에 벚꽂이 피었다. 음지에서는 피고 양지에는 지는 꽃의 움직임이 분분하다. 바람결에 날리는 벚꽃은 후드득 추락하는 꽃처럼 처절하지 않다. 너울거리며 산화하는 꽃잎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환상이다. 꽃이 진 자리에 빛이 어른거리면 현실의 경계는 가뭇없이 사라진다. 새털처럼 가벼운 봄이 그렇게 오고 간다.

서울 사람들은 남산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남도땅이나 강원도 산골을 떠올리듯 하진 않지만 문득 문득 아름답기도 하다. 비 온 뒤 새순이 돋거나 꽃이 피는 모습이 그러하다. 남산에는 북한산처럼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도 없고, 지리산처럼 무성한 숲이 있지도 않다. 순환도로와 남산터널이 뚫리고 정수리까지 다 내줄 만큼 힘겹도록 복잡할 뿐이다.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을 만큼 남산은 이미 너무 가깝다. 그러나 남산의 봄은 그냥 건너뛰기엔 아깝다.

장충단공원을 지나 국립극장 뒤안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화려한 봄날의 외출은 시작된다. 도로에서 불과 몇 백 미터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달라진다. 이런 날은 저마다 꽃에 도취된다. 뛰는 사람이 있고 빠르게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화보다 느린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자동차가 사라진 길에서 느린 걸음으로 그간의 무심한 삶을 달랠 수 있다. 남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주위를 살펴볼 여유가 있음을 말한다. 남산을 걸어서 오를 수 있다면 그럭저럭 살만한 것이다. 

벚꽃 만발한 남산기를 걷는 사람들.
벚꽃 만발한 남산기를 걷는 사람들.

꽃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볼거리 많아

남산에 갈 땐 거창한 카메라와 렌즈는 없어도 좋다. 그 대신 작은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챙겨야 할 것이다. 적절한 카메라의 선택은 언제나 중요하다. 욕심이 앞서면 꺼내보지도 못하고 촬영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비토리오 셀라(1859-1943)의 19세기 파키스탄 히말라야 사진이 전시됐다. 비토리오 셀라는 이탈리아의 산악인이자 사진가였다. 그는 세계 2위봉인 K2(8,611m)와 브로드피크, 가셔브룸 등 8,000m급 고산을 4개나 포함하는 세계 최장의 발토로빙하를 탐험하며 누구도 보지 못했던 산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한다. 당시엔 카메라 장비만 100㎏이 넘었으므로 운반만 해도 막대한 노동력이 드는 일이었다. 히말라야 지도가 그려지기도 전이므로 그 자체로 모험이며 무사히 다녀온 사실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토리오 셀라는 이미 작고한 지 60년이 넘었고, 그의 사진은 한 권의 책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 사진에 감동을 받은 한 스님에 의해 사진 몇 장이 컴퓨터작업으로 생생하게 복원되었다. 히말라야에 몰입했던 100년 전 사람과 그 사진에 매료된 오늘의 사람과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 사진 중 한 장은 가로 폭이 6m나 되는 대작이다. 6매로 이어진 파노라마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처리한 이 사진은 K2를 다녀온 산악인과 사진가들의 커다란 놀라움과 찬사를 받았다.

꽃불이 핀 듯한 벚나무.
꽃불이 핀 듯한 벚나무.
비토리오의 시각은 산에 멈춰 있지 않고 발토로빙하의 스케일과 웅장함을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 예가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사람은 거대한 산과 빙하의 크기를 간접 설명하는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자연을 보는 관점과 히말라야에 대한 경외감이 그 사진에 녹아 있다.    

오래 된 산 사진 한 장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하듯 남산은 여러 관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높이로 산의 품격을 매긴다면 어디에도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산이다. 그러나 한국의 수도 서울을 아늑하게 보위하는 남산의 입지는 어느 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선 남산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살펴보자. 백두산에서부터 뻗어내린 백두대간은 금강산을 향해 달리다가 식개산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꺾어진 후 한북정맥이란 이름으로 한강 북쪽을 내닫는다. 한북정맥은 철원, 포천, 양주, 의정부의 산줄기를 일으키며 파주 교하의 오두산을 끝으로 한강으로 진다. 여기서 의정부에서 갈라지는 한 줄기는 다시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인왕산등을 잇는다. 남산은 이 줄기에 속해 있으며, 한강으로 내려오면서 방향을 틀어 응봉과 큰매봉으로 이어져 끝을 맺는다.

서울의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를 이루는 남산은 높이가 265m이고, 면적은 2.97㎢(약 90만 평)에 이른다. 남산은 남쪽을 가리키지만 원래 앞을 뜻하는 의미다. 서울의 앞산이란 남산을 말하며, 뒤를 뜻하는 북산은 그의 상대 개념이다. 죽어서 북망산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남산은 미래를 지향하는 밝은 의미의 산으로 볼 수 있다.

한 폭의 파스텔화를 보여주는 남산의 벚꽃.
한 폭의 파스텔화를 보여주는 남산의 벚꽃.

한북정맥 끝 줄기…미래지향 의미의 앞산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혜안으로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좌청룡 우백호에 각기 인왕산과 낙산을 꼽았다. 그 때 북악산은 현무이며 남산은 주작이 되었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남산은 마뫼, 앞산, 목멱산, 인경산, 열경산, 잠두봉, 종남산 등 별칭도 많았다. 도성 남쪽에 있어 남산이라 했고, 목멱산은 나무를 많이 심어 경복궁을 가리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인경산과 열경산은 밝고 양지바른 안산(남산)에 경사스러운 일을 끌어들이라는 축원의 뜻이 담겨 있다.

남산타워 아래 남아있는 조선의 성곽.
남산타워 아래 남아있는 조선의 성곽.
종남산은 조선 8도의 봉수가 남산에서 끝난다는 의미이며, 잠두봉은 산의 모습이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그래서 한강 건너 사평리에 누에의 먹이인 뽕나무를 많이 심어 남산의 기를 증진시키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와 고층건물이 빽빽하지만 잠실과 잠원동의 지명이 그 유래를 입증한다.

남산이 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910년이다. 당시 공원표지로 세운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는 고종(高宗)의 친필 비석이 국토통일원 청사 옆에 보존되어 있다. 산꼭대기에는 조선시대 이래 국사당과 봉수대가 있었고, 임진왜란 때는 북쪽 산허리에 일본군이 왜장대라는 성채를 쌓기도 했다. 동쪽 사면에는 동국대학교, 국립극장, 반공연맹, 이북5도청 등과 장충단공원이 있다. 장충단공원은 조선시대에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자리로, 고종 때 붙인 명칭이다.

어린잎이 돋아 나오고 있는 나무의 합창.
어린잎이 돋아 나오고 있는 나무의 합창.
서쪽으로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백범광장과 김구 선생 동상, 남산도서관, 교육과학연구원, 식물원, 이황, 황희, 정약용 등의 동상이 있고, 소월시비도 있다. 또한 광복 전까지 분수대광장 주변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경성신사와 조선신궁 등이 있었다. 지금은 조선 태조 때 쌓은 성벽 원형이 비교적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베어내고 아카시아를 심어 경관을 해쳤고, 광복 뒤 무질서한 개발로 자연이 훼손되었으나 근래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조금씩 경관이 복원되고 있다. 현재 산정에는 서울타워라 불리는 방송탑과 팔각정이 있다. 서울타워는 1972년 세워졌으며, 높이 236.7m의 종합송신탑으로, 사방 60km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남산에 오르면 남산은 보이지 않는다. 남산에서 남산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서울의 모든 길이며 건물을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남산은 볼 게 많다. 남산은 민족의 애환이 담긴 상징물로 지난 과거사를 떠올릴 것도 많다. 가재 잡고 은행 줍던 어릴 적 생각도 나게 한다. 꽃바람에 취해 사람도 보고 꽃도 보며 남산을 즐기다 보면 사진 찍어야 하는 생각은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그렇게 하여 하루의 일상이 작은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왼쪽) 높이 236.7m로 사방 60km를 조망할 수 있는 서울타워. (오른쪽) 터널을 이루는 국립극장 뒤편의 꽃길.
(왼쪽) 높이 236.7m로 사방 60km를 조망할 수 있는 서울타워. (오른쪽) 터널을 이루는 국립극장 뒤편의 꽃길.

남산촬영 가이드

남산엔 찍을 것 보다 볼게 많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공원이어서 그렇다. 남산을 소재로 하는 사진은 석양이나 일출시에 서울타워를 수용하여 찍는 도시풍경이 많다. 남산의 봄철 촬영요소는 순환도로 주변에 피어나는 벚꽃 진달래 개나리 등이다.

남산은 서울에 위치한 산이므로 좋은 날씨를 선택하지 않으면 뚜렷한 모습을 만나기 쉽지 않다. 대체로 비 온 뒤에 보는 풍경이 좋다. 남산의 벚꽃은 순환도로 양옆으로 만개한다. 자연스런 모습은 망원렌즈로 부분만을 당겨 찍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벚꽃이 무리지어 있는 파스텔화 같은 풍경을 따낼 수 있고, 신록이 피어나는 상큼한 잎새들의 합창도 찍을 수 있다. 이럴 때의 렌즈는 200mm 이상일수록 유용하다.


남산 가는 길

남산은 사통팔달 오르는 길이 많다. 벚꽃이 필 때 남산을 가려면 국립극장 정문 입구 왼편에서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는 방법이 있다. 순환도로를 따라 남산타워까지 오를 수 있다. 서울역에서는 지하철 1호선 4번 출구 100m 앞에서 402번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 앞에서 내린 후 순환도로나 계단을 따라 15분쯤 걸으면 서울타워에 도착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은 지하철 4호선 명동역 3번 출구에서 퍼시픽호텔 오른쪽 길로 걸어서 10분쯤 올라가면 된다. 케이블카는 15~20분 간격으로 오전 10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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