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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현대판 겸재들은 반복을 밥 먹듯 한다

월간산
  • 입력 2006.11.10 17:33
  • 수정 2006.11.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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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북한산) 거대암봉 촬영

▲ 바위와 바위 사이로 삼각산의 아침 해가 떠오른다.
▲ 바위와 바위 사이로 삼각산의 아침 해가 떠오른다.
이 땅에 수많은 산 중 으뜸이 어디인가? 우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문은 흔히 가질 수 있다. 백두산을 빼고도 대부분 설악산이나 지리산, 또는 한라산쯤으로 그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자기가 사는 곳의 산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란 극히 주관적이어서 어디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국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경위 0도(또는 360도)의 시작점으로 설정했듯이 한국의 중심은 서울이다.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그 중심의 뿌리로 보아도 좋으리라.

작고한 시인 김장호는 <한국명산기>(평화출판사)를 통해 싫증나지 않은 산으로 북한산을 꼽았다. ‘둘레가 시끌시끌하던 시절도 지나고, 정다웠던 벗도 내 곁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인데, 산만은 언제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산은 그 덩치에 비해 버거울 만한 일천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의 화가 겸제 정선(1676-1759)은 우리의 자연을 묘사하기 위해 전국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수많은 사실적 실경을 남겼다. 그의 그림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중국 회화를 모방하지 않고 우리의 산수를 우리 화법으로 그려낸 겸제의 실경묘사로 인해 비로소 ‘동국진경산수’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 인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만경대 암릉의 정상. 백운대와 함께 삼각을 이룬다.
▲ 인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만경대 암릉의 정상. 백운대와 함께 삼각을 이룬다.

만일 겸제의 손에 카메라가 쥐어졌다면 어땠을까. 가정일 뿐이지만 그렇다 해도 진경의 대상에서 북한산은 제외시킬 수 없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북한산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인 백운대가 836m지만, 그것은 단지 수치에 불과할 뿐이다. 높이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북한산에는 인수봉이 있다. 인수봉은 백운대보다는 30여m나 낮다. 그럼에도 보는 관점에 따라 인수봉이 백운대를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남면에서 보는 백운대는 또 달리 보이지만, 그렇더라도 인수봉의 위용은 죽지 않는다.

인수봉은 높이 300여m에 달하는 바위덩어리로 그 높이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스케일과 느낌을 지닌다. 거석, 거암, 거벽 등은 거대한 바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등반에서 거벽의 개념은 조금 다르지만 인수봉이 있음으로 해서 이런 말을 수용할 수 있다.

거벽은 거시적 조망을 낳는다. 인수봉의 조망은 영봉에 서서 북동면을 바라보면 비로소 그 신령스런 광경이 열린다. 거기에다 남면은 시원하고도 장대한 모습을 또 하나 보여준다. 인수봉의 거시적 조망은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하나의 느낌만으로도 북한산은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게 하는 명산이 되게 한다.


강건한 남성적 아름다움

▲ 만경대 암릉에 자생하는 늘푸른 소나무.
▲ 만경대 암릉에 자생하는 늘푸른 소나무.

산악인들이 애정의 손톱자국을 인수봉에 남기듯 사진가들은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오른다. 이들은 묵직한 카메라에 삼각대를 받쳐들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산을 찾는다. 일기가 불순한 날을 가리지 않고 밤과 낮의 기온차가 심한 날을 특히 기다린다. 하나의 정수를 보기 위해 오르고 또 오르는 그들이 바로 현대판 겸제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사진가들이 찾는 곳은 백운대와 인수봉이 조망되는 건너편 봉우리다. 이곳은 일명 족두리봉으로 통하며, 만경대 암릉의 정상부를 이룬다. 삼각을 이루는 세 봉우리를 거기서 모두 조망할 수 있다.설악산이 빼어남이 겹치는 수려한 산이고, 지리산이 부드럽고 유장하다면, 북한산은 강건한 느낌의 남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의 정수는 화강암 덩어리에 담겨있다. 화강암은 바로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을 말하며, 삼각산이라 부르는 근거를 제공한다.

▲ 기운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삼각산의 바위들.
▲ 기운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삼각산의 바위들.

영조 21년(1745)에 간행된 북한지에는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부아악(負兒岳)에 올랐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부아악은 인수봉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 기록은 북한산에 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북한산이란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 이전에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문헌들은 하나 같이 삼각산이란 이름을 더 많이 쓰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북한산이란 이름은 일제의 영향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강북문화원이 주최한 삼각산 지명에 관한 역사문화 세미나에서 삼각산은 산이름이고, 북한산은 지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날 참석한 국사학자들은 고양시의 북한동(北漢洞)이나 북한리(北漢里) 같은 지명과 조선 숙종 때 중건한 북한산성(北漢山城) 역시 지명으로 사용된 예로 들었다. 현재 쓰이고 있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과거에 쓰던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자는 취지는 그래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날씨 의존도 커 창작의 여지 적다’

백운대(백운봉)와 인수봉은 어디서 보아도 확연하게 하나의 뿔을 이루지만 만경봉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에 노적봉을 삼각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그렇듯 삼각산의 세 봉우리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시각적 문제만을 놓고 본다면 이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노적봉에 올라 삼각을 이루는 봉우리를 찾으면 백운대와 인수봉에 만경대의 암릉이 정상부위가 더해진다. 이 세 봉우리는 단지 형태를 따라 지어진 이름일 뿐이지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진적 관점의 문제다. 사진가들이 삼각산을 이해하는 데는 날씨와 계절 감각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 인수봉 남면.
▲ 인수봉 남면.

만경대 암릉의 정상에 오르면 우선 눈이 시원해진다. 백운대와 인수봉의 전모가 막힘없이 열리기 때문이다. 산 풍경은 보통 구름과 아침 안개가 골 사이에 피어오를 때 깊고 그윽한 느낌이 나지만, 그냥 이곳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경은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모두 담기엔 카메라의 시야는 턱없이 좁다. 그래서 선택하는 방법은 결국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단 인수봉을 선택하려면 동쪽으로 뻗은 바위능선으로 20여m쯤 내려서야 한다. 거기에 서면 인수봉 남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1929년 5월에 기록상 인수봉에 처음 올라 등반기를 남긴 아처가 인수봉을 조망하며 사진 찍은 곳도 바로 이 능선에서 바라본 모습이었다.

산 풍경을 찍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절정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반복적으로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날씨 운까지 따라야 한다. 개성을 무기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산악풍경이 날씨의 의존도가 커서 창작의 여지가 적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럼에도 일단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구태의연한 시도를 멈추지 않게 된다. 생각과 실천은 그렇게 늘 괴리가 있는 법이다. 어쨌건 삼각산을 제대로 찍으려면 반복해서 좋은 때와 날씨를 공략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기본이다.

내 책상 서랍엔 아직 버리지 못하는 엽서 몇 통이 있다. 10대에서 20대를  넘기며 친구들과 주고 받던 편지들이다. 그 시대를 받쳐주는 공간의 배경은 바로 삼각산과 인수봉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몇 년을 보낸 이곳은 아직 즐거움이 샘솟고 있다. 김장호 시인이 보았다던 북한산의 천의 얼굴은 역시 과장이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곳, 서울의 진산이며 세상의 중심인 삼각산은 오늘도 푸르기만 하다.

▲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어우러지고 있는 삼각산의 가을.
▲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어우러지고 있는 삼각산의 가을.

# 삼각산 촬영포인트 가는 길

삼각산은 산행 기점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통상 산의 앞면으로 여기는 동쪽의 우이동과 정릉 기점, 그리고 서쪽의 구파발과 대서문이 있다. 그리고 남면에는 출입구 역할을 하는 되는 구기동이 있지만, 북면은 도봉산과 연결되어 있어 산행기점보다는 종주등산의 통로가 된다.

삼각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만경대 암릉은 우이동에서 출발한다. 먼저 버스종점에서 도선사 일주문 앞 주차장까지 올라야 한다. 거기서 매표소를 통해 바람골을 통과하여 인수산장을 거쳐 백운산장까지 피해갈 수 없는 한 길이다. 그 이후 백운대를 향해 오르다가 위문에서 백운대로 성곽을 따라 남면으로 10여 분 오르면 암릉의 정상이다.

일명 족두리 봉으로 부르는 이곳에서 백운대와 인수봉을 조망할 수 있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보통의 걸음으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전후로 족두리봉에 오를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만경대로 가는 암릉이 연결되어 있다. 위험지역이기도 하지만 등반이 목적이 아니라면 여기서 더 이상 가지 않고 되돌아 내려가는 것이 좋다.

여기서 인수봉을 독립적으로 찍으려면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약 20여m 내려서면 평평한 암반이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인수봉이 가장 빼어나게 담을 수 있는 포인트의 하나다. 반대로 백운대와 족두리봉을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인수봉 정상이지만, 암벽등반을 통해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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