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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역광 잘 이용하면 강렬한 가을서정 담아

월간산
  • 입력 2006.12.14 11:00
  • 수정 2006.12.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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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천관산 바위와 억새 촬영

가을꽃이 사라지고 나니 빈 들이 여기 저기 많아졌다. 어디를 가야할지 망설여지는 계절이다. 더 이상 화려함이나 풍요로움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 밋밋한 초겨울. 그러나 산은 다행스럽게도 허전하지만은 않다. 적어도 바람에 날리는 억새와 노을 붉게 타는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면 슬픈 일이다. 스산한 날의 산은 그래서 홀로 가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굳이 떠나겠다면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있을 법한 남도 땅이 좋을 것 같다. 전라남도 장흥의 명산 천관산은 빈 마음을 받아줄 만한 그런 곳이다.

천관산(723.1m)은 내장산 월출산 변산 두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수도권 사람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제 때가 아니어도 한번쯤 올라볼 만한 산임에는 틀림없다. 천관산은 바위가 아름다운 곳이다. 만일 이 산에 억새만 있다면 특색 있는 산이라 할 수 없다. 천관산의 수려한 바위들은 억새와 함께 어우러지는 가을에 특별한 산으로 새로 나기 때문이다.

천관산의 형태는 천주봉, 관음봉, 대세봉, 석선봉, 종봉, 선재봉, 돛대봉, 구룡봉, 독성암, 아육탑, 갈대봉, 아기바위, 사자바위 등 수십 개의 기암들이 군을 이루며 솟아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한 천자의 면류관 같다하여 천관산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정상을 기점으로 보면 북서쪽은 암벽 지대, 동남쪽은 육산을 이루어 남성적인 강한 느낌과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함께 갖추고 있다.

▲ 관음보살이 불경을 실은 배의 돛대였다는 전설이 담긴 진죽봉 일원의 바위들.
▲ 관음보살이 불경을 실은 배의 돛대였다는 전설이 담긴 진죽봉 일원의 바위들.

암봉, 육산 두루 갖춰 남성, 여성 동시 느낌

▲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오른 기암 기둥.
▲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오른 기암 기둥.
가을 한 때 피는 억새는 필시 육산에 펼쳐져 있으려니 생각하여 삼산리로 간다고 해도 관산읍 내동의 장천재는 한번쯤 둘러보는 게 좋을 것이다. 친숙한 느낌이 드는 수림 사이의 도화교를 지나면  600년 묵은 아름다운 소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태고송이란 이름을 지닌 나무는 바람에 우는 소리를 통해 날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신기가 서려있다. 천관으로 가는 통과의례는 거송을 지나야 비로소 끝난다.

장천재 주변의 경관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울 정도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위백규(1727-1795) 선생은 천관산 6개의 동천, 89암자, 작은 바위들의 이름과 유래를 세세히 밝힌 인문지리서 지제지(支提誌)를 펴냈다. 또한 주변 계곡 명소엔 청풍담, 백설뢰, 도화량, 세이담, 명봉대, 추월담, 청령뢰, 와룡홍이란  아름다운 이름의 장천팔경을 만들어냈다.

천풍산(천관산)의 자연을 읊조렸던 노명선(1707-1775)의 천풍가는 ‘공명의 박명?고 부귀에 연분업셔’로 운을 뗀다. 자연을 대하려면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 것쯤은 옛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음인가.

천관(天冠)이란 이름은 예부터 천풍(天風), 불두(佛頭), 우두(牛頭), 혹은 지제(支提)로도 불리어 왔다. 천관보살이 머무르며 법을 설파했다 하여 천관이며, 바람이 많이 분다 해서 천풍이다. 불두란 이름은 북쪽에 솟은 관음봉의 형상을 가리키는 것이며, 우두 역시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오백나한이 남쪽 봉우리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제란 이름 역시 탑묘를 뜻하는 것으로 볼 때 천관산은 불교적 연유의 산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 바위들과 능선의 흐름은 산 풍경 포인트다.
▲ 바위들과 능선의 흐름은 산 풍경 포인트다.

들머리 장천재를 지나면 등산로는 연결된다. 그리고 작은 개울을 건너 약간 오르면 곧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천관산의 조망은 이 길에서 중간쯤 가면서부터 펼쳐진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군락을 만나게 될 때 길은 구정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뻗어있고, 끝 부분은 연대봉과 구룡봉의 갈림길이 된다. 연대봉까지는 걷기 편한 길이다.

능선길을 걷다보면 샘터가 있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봉화대가 있는 연대봉이다. 원래 옥정봉이었던 천관산 정상은 밋밋한 곳이었으나 연기를 피어올렸다 해서 연대봉 또는 봉수봉으로 불렀다.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고려 의종 3년(1149년)에 봉화대를 쌓은 뒤 봉화를 올렸기 때문이다. 장흥의 억불산(510m)과 병영의 수인산(561.3m)을 교신했던 봉화대는 기단석만 남았던 것을 1986년 3월에 동서 7.9m, 남북 6.6m, 높이 2.35m로 새로 쌓은 것이다.

천관산 정상에 서면 다도해를 비롯하여 동쪽으로 고흥 팔영산, 남쪽엔 완도, 맑은 날엔 멀리 제주도 한라산, 해남 대둔산, 영암 월출산과 순창 추월산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만 권의 책이 쌓인 모습인 대장봉의 석대를 일컫는 환희대에서도 사방이 트여 남해 바다와 월출산, 제암산, 팔영산, 그리고 영암, 강진, 장흥, 보성 등지의 산들이 시원하게 열린다. 특히 남해 바다 위의 거금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 신지도 등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거리보다 광선, 길보다 형태 쫓아야

▲ 억새는 해를 안고 바라볼 때 극적인 느낌을 준다.
▲ 억새는 해를 안고 바라볼 때 극적인 느낌을 준다.
천관산 억새는 정상 주능선 양옆 1km에 펼쳐지는 40만 평의 밭이 최고다.  해마다 10월 중순부터 말경이면 이곳에서 절정의 억새에 맞춰 축제가 열린다. 천관산은 진달래 피는 봄도 좋지만 시각적인 면에선 억새 피는 때가 최고라 할 수 있다. 이 때 연대봉에서 환희대로 이어지는 억새에 묻혔다가 다도해를 바라보며 하산한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좋다 해도 길 따라 사람 따라 걷게 되면 풍광은 늘 천편일률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카메라를 메고 걷는 천관산 등산은 조금 달라야 한다. 한 가지 방향을 택한다면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역광을 받으며 걷는 것이다.

북쪽 기점 천관사와 남쪽 기점 탑산사로 오른다 해도 정상에 서면 북남 방향으로 걸어보는 것이 좋다. 시간은 한낮만 피하면 된다. 머리 위에 태양이 있을 땐 역광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2시 이후가 좋겠다.

빛의 마술가로 불리던 화가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1606-1669)는 평범하지 않은 빛인 반역광을 즐겼다. 반역광은 극적효과를 얻어내는 과장스런 빛의 하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을 통해 내면을 꿰뚫는 힘과 통찰력을 보였던 그의 반역광은 사진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여 이른바 렘브란트 광선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억새밭에선 렘브란트가 즐겨 쓰던 광선보다 더 강렬한 광선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역광이다. 역광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두 가지 느낌을 지닌다. 사물의 윤곽과 세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제대로 취해도 완성도는 커지기 마련이다. 만일 두 가지를 자유자재로 선택하게 된다면 바로 전문 영역으로 가는 것이며, 성공적 사진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 비춘다면 천관산 사진여행은 꼭 지형에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거리보다는 광선을, 길 보다는 형태를 더 쫓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해를 안고 걷다보면 순간순간 너울거리는 광선속에서 잿빛 가을 풀이 아닌 깊은 가을서정과 만날 수 있으리라. 

▲ 억새와 바위의 등가.
▲ 억새와 바위의 등가.

천관산 억새 촬영 가이드

천관산은 억새가 좋은 산이다. 보통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까지 풍성한 느낌의 억새를 만날 수 있다. 매년 10월 중에 열리는 천관산 억새축제를 맞춘다면 분위기 있는 억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천관산의 억새는 여러 기암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특색이다. 억새만을 찍을 땐 역광이 좋지만 사람 또는 바위와 함께 찍을 땐 사광이나 반역광도 좋다. 억새를 역광으로 찍을 땐 본래 밝기보다 노출이 부족해도 좋다. 회색 톤에서 실루엣의 분위기로 갈수록 강렬한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산 풍경이 새벽 시간이 좋은 반면 억새는 오후 시간도 관계없다. 억새 촬영에 좋은 렌즈는 광각에서 200m 전후의 망원렌즈까지 다양하게 필요하다.


천관산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동광주 나들목-제2순환도로-화순(외곽도로)-29번 국도-이양 삼거리-장평 봉림 삼거리-유치-장흥-23번 국도-관산-장천재 순으로 가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목포-2번 국도-강진-장흥 순지 나들목-23번 국도-관산-장천재 순이며, 남해고속도로를 탄다면 순천-2번 국도-보성-장흥 순지 나들목-23번 국도-관산-장천재 순이다. 관산읍에서 장천재까지는 5km.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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