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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눈꽃 촬영은 해뜰 때 가장 아름다워

월간산
  • 입력 2007.02.05 17:52
  • 수정 2007.02.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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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이 제격…골안개 피어나기 전 풍경은 덤<br>덕유산 눈꽃 촬영 가이드

명산으로 알려진 곳 중 한국 산의 전형 세 곳을 꼽는다면 지리산, 오대산, 그리고 덕유산을 들고 싶다. 설악산이나 한라산도 엄연한 우리 산이지만 보편적 정서로 꼽는다면 그렇다.

일전에 모 잡지의 요청으로 오대산(1,563m) 과 덕유산(1,614m)을 비교해 볼 일이 있었다. 두 산은 모두 즐겨 찾는 곳인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결론을 얻었다. 보이는 산과 보이지 않는 산이 있다면 바로 두 산이 해당할 것이라고. 오대산이 쉽사리 전모를 드러내지 않은 숨겨진 산이라면 덕유산은 구속 없이 열린 산이다. 생각해보니 갈수록 깊은 느낌이 오대산에서 들었고, 오를수록 벗어난다는 느낌을 덕유산에서 받았었다.

이런 비교와 별개로 오대산은 소금강을, 덕유산은 구천동이란 절경을 거느린다. 그리고 두 곳 다 골이 깊어 외부의 접근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덕유산은 한 마디로 열린 산이란 단정을 가능케 한다. 일단 주능선에 오르면 유장하고도 아름다운 대간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 덕유산의 새벽을 카메라에 담는 부지런한 사진가들.
▲ 덕유산의 새벽을 카메라에 담는 부지런한 사진가들.

지리산과 함께 남한의 대표적 육산답게 덕이 넉넉한 덕유(德裕)산-. 섬진강을 따라 남해바다로 내달리는 호남정맥의 종산 영취산을 사이에 두고 두 산은 서로 거울처럼 한국산의 전형을 보여준다. 남덕유와 북덕유의 모습이 어떤가를 지리산에서, 지리산 백리 주능선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덕유산에서 볼 수 있다. 지리산만으로 우리 산하의 전형을 말하기란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전제는 바로 덕유산이 있음으로 가능하다.

남한의 대표적인 육산에 골도 깊어

어찌나 몸집이 큰지 이 산에만 숨어들면 누구든 쉽사리 찾지 못해 덕유산을 가르는 육십령에는 늘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행인들은 약탈을 당하지 않기 위해 60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이미 조선시대 이야기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 이 지역이 무진장(무주·진안·장수)으로 불리는 오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근거 없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그리고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큰 줄기가 빨치산의 근거였다는 것은 높고 깊은 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 새벽은 언제나 사람과 산을 아름답게 한다.
▲ 새벽은 언제나 사람과 산을 아름답게 한다.

그런데 덕유산 자락엔 어느 능선에도 절이 없다. 산처럼 살다간 시인 김장호는 그 큰 품새와 넓이를 가진 덕유산에 제대로 된 사찰이 없는 사실에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산이 그렇게 커버리면 거기에 절도 성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천지 사방 툭툭 터진 곳에 수행자들의 은거지가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인가. 신라 때까지 14개 사찰이 있었고, 남덕유 아래에 영각사와 구천동 상류에 백련사가 있긴 하지만, 번듯한 본사급 절을 둔 지리산이나 오대산에 비한다면 그저 소박할 뿐이다.

덕유산은 능선 자체가 백두대간의 마루금이다. 그리고 대간 능선에서도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산의 흐름대로만 간다면 최상의 산행이 절로 이루어진다. 덕유산의 산행기점은 대체로 남에서 북으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환상이 아니라 끝을 보는 직선의 패턴이다. 하지만 걷다 보면 직선조차도 곡선의 연결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출발점이 장수와 함양을 가르는 육십령이면 남덕유를 올라서 삿갓봉, 무룡산, 동엽령을 거쳐 백암봉으로 연결된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동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덕유산 주능선은 그대로 직진하여 중봉을 거쳐 향적봉까지 간다.

▲ 멀리 가야산 원경이 보일 때 덕유산은 더욱 아름답다.
▲ 멀리 가야산 원경이 보일 때 덕유산은 더욱 아름답다.

덕유의 정상 향적봉(1,614m)에 서면 어디를 보아도 높은 곳은 없다. 동으로는 지봉, 서쪽 멀리 말귀처럼 솟아오른 마이산, 남쪽으로는 남덕유, 북서쪽으로 적상산, 북으로는 속리산까지 모두 발 아래로 굽어보는 조망이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만이 같은 눈높이를 이룰 뿐이다.
남에서 북으로 직선종주를 택하지 않는다면 무주구천동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거나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서 15분쯤 걸어 쉽게 향적봉에 오를 수 있다. 이렇게 오른 사람들은 대개 남덕유까지 가기 보단 다시 백련사로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말에 어울리는 주목의 의연함.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말에 어울리는 주목의 의연함.

어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향적봉까지 오른 사람에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의 의연한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덕유산에 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각적 특권의 하나다. 복잡한 일에 약한 기계치나 사진의 문외한일지라도 여기까지 오게 되면 사진 찍고 싶은 충동이 한번쯤 일어나기 마련이다. 

기온차로 생기는 상고대도 이색 풍광

덕유산에는 눈꽃이 있다. 눈꽃은 덕유산 향적봉에 피어나며 기온차가 많은 날이나 눈 내린 날 아침 가지마다 피는 움직이는 꽃이다. 덕유산에 올라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사람은 눈꽃의 생성구조를 잘 알 수 있다.

향적봉에서 고사목에 붙은 상고대를 보거나 눈꽃을 만났다면 이후 중봉까지는 더 가야 후회가 없다.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곳에 서면 비로소 덕유산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지리산의 주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작가들이 특히 덕유산을 많이 찾는 이유는 이런 아름다운 산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 산악사진의 교과서 덕유산 조망(중봉에서 촬영).
▲ 산악사진의 교과서 덕유산 조망(중봉에서 촬영).

겨울의 한가운데서 눈과 하늘만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색다른 경험인가. 덕유산은 그런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골안개가 깔려 구름에 떠있는 듯한 선경을 보려면 새벽녘에 이미 능선에 서 있어야 한다. 눈 소식이 있는 날 산장에서 하루를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그런 풍경과 만날 수 있으며, 쏟아질 듯한 하늘의 별도 덤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눈이 내리면 어떻게 산에 올라가지? 겨울산은 산악인들만 가는 것인가? 이런 걱정이 보통의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울이 섞인 든든한 옷으로 무장하고 산행길에 오르면 말대로 반은 오른 것이라 쳐도 틀리지 않다. 꼭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눈꽃 만발한 덕유산을 올라보자. 움직이는 것이 건강을 잃지 않는다는 건 카메라를 들고 오르는 과정에서 저절로 깨우치게 된다. 

▲ 아침 해와 함께 피어나는 갖가지 형상의 눈꽃나무들.
▲ 아침 해와 함께 피어나는 갖가지 형상의 눈꽃나무들.

열린 산 덕유산은 그 아래 계곡조차도 아름다운 바위로 절경을 이루어 놓았다. 신라와 백제의 관문이었던 나제통문을 지나 만조탄, 세심대, 월하탄, 인월담을 거치며 구천폭, 백련담까지 33경으로 부르는 무주구천동이다.

예부터 선비들이 산수를 즐긴 정자들은 전국에서 덕유산 자락이 가장 많았다. 한국 제일의 정자라고 일컫는 농월정을 비롯하여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이 있으며, 삼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을 맞던 위천의 수승대와 서쪽의 청리정도 자연과 건축의 절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옛 분위기와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은 이밖에도 제법 많다. 덕유산의 열린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그렇게 높은 산도 결국 사람 사는 마을과 멀지 않음을 알게 된다. 열려 있다는 것, 그리고 크고 넉넉함이란 결국 낮은 곳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덕유산의 눈꽃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눈꽃이 피어나는 고사목이 자연스런 상태로 남아있고 빼어난 산악미를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덕유산은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이용하여 정상까지 쉽게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눈꽃이 형성되는 이상적 조건은 밤사이에 눈이 내리고 아침에 개는 상황이다. 기온차로 생기는 상고대의 경우엔 다르지만, 눈꽃이 피어나는 겨울 산의 풍경은 반드시 눈 온 다음날 아침이어야 한다.

아침에 눈꽃을 만나기 위해선 전날 향적봉 산장에서 숙박하는 것이 정석이다. 눈꽃의 촬영 타이밍은 해가 뜰 때 한 번쯤 찬스가 오지만, 햇빛이 성숙해지기 시작하는 아침 7시30분 이후 2시간 정도가 좋다. 일단 눈꽃 촬영에 성공하면 골안개가 피어오르기 전에 살아나는 원경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풍경이다. 덕유산 향적봉에 오르면 중봉까지는 가야 후회가 없다. 산악사진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교과서 같은 풍경 하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는 길(서울 기점 승용차 기준)

덕유산은 크게 남덕유와 북덕유로 나뉜다. 무주구천동 33경으로 불리는 덕유산은 북덕유에 포함되어 있고, 남덕유는 종주자들에게 산행기점이 된다. 종주산행은 백두대간의 진행방행인 남에서 북이 자연스럽다. 남덕유로 가려면 장수를 거쳐 산행기점인 육십령 또는 영각사로 간다. 북덕유로 가는 길은 무주로 향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옥천, 영동을 지나 무주로 간다. 그러나 요즘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생겨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덕유산 정상 아래 향적봉 산장은 약 6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산장은 담요 같은 침구를 빌려주기도 하는데, 눈이 오는 주말엔 새벽 일출과 눈꽃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붐빌 수도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

대전-통영간 고속국도~덕유산 나들목(좌회전)~19번 국도~안성면 소재지~사산 삼거리(우회전)~49번 지방도~치목터널~구천동터널~37번 국도(우회전)~무주리조트 입구~삼공 삼거리(우회전)~덕유산 국립공원(무주구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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