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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주변 풍경 실루엣으로 활용해야

월간산
  • 입력 2007.01.02 17:00
  • 수정 2007.01.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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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만으론 단조로운 속초 동명항의 일출 촬영<br>동명항 일출 촬영 가이드

아침부터 흩뿌리던 비는 그쳤지만 영동 산간 지방에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 문득 그곳을 넘어 해 뜨는 바다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럴 때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건 무슨 심리일까. 반복되는 일이지만 새해가 다가오면 늘 그랬다. 삶에 꼬인 마음을 한번쯤 풀어낸 곳이 이즈음의 바다였기 때문이리라.

7번 국도 해안선을 따라 무시로 시선을 보내던 동해바다로 떠난다. 백두대간에 머물던 저기압과 바다에 버티고 있던 고기압의 한 판 승부는 결국 동해의 우세로 판가름 난 듯했다. 산은 물을 넘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처럼 대간은 산과 바다의 기압을 갈라놓았다. 그래서 바다에 내리는 비는 산을 넘지 못하고, 산 넘어 부는 바람은 바다까지 미치지 못한다. 대립이 아닌 공존의 개념일 테지만 이 두 개의 힘이 강하게 부딪히게 되면 폭풍이 일어나고 폭우와 폭설이 내리기 마련이다. 

▲ 지역 주민들의 힘을 모아 해상에 세워진 해돋이 정자.
▲ 지역 주민들의 힘을 모아 해상에 세워진 해돋이 정자.

아름답지 않거나 장엄하지 않은 바다 없어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가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눈을 멎게 해준 하늘의 대가처럼 여겨졌으나 하늘엔 별이 반짝거렸다. 산에는 하얗게 눈이 쌓였다. 힘들고 어렵게 고개를 넘을 때에 비한다면 터널 덕에 쉽고 편해지긴 했다. 그러나 시인 이성선님이 미시령에서 보았을 절정의 순간을 뒤쫓아 느껴볼 겨를도 함께 사라졌다. 설악과 동해바다를 그리는 애틋함의 크기가 알게 모르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이성선의 ‘미시령 노을’

▲ 사람과 바위는 새벽의 실루엣을 이루는 구성 요소다.
▲ 사람과 바위는 새벽의 실루엣을 이루는 구성 요소다.

바다는 먼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한다. 무덤덤한 시간이 종종 필요할 때 바다는 소리 없이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 이런 마음이 들던 때부터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둘 곳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아직 바뀌지 않는다. 설악과 동해 바다. 그곳에 일출을 보러 가는 것도 그냥…. 다른 이유가 없다.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있고 싶어서 왔다
-이생진의 ‘바다에 오는 이유’

▲ 바다를 바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하늘, 땅, 섬, 해, 배, 심지어 날아가는 새들까지도 포함된다.
▲ 바다를 바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하늘, 땅, 섬, 해, 배, 심지어 날아가는 새들까지도 포함된다.
아름답지 않거나 장엄하지 않은 바다는 없다. 거기엔 긴장도 없다. 젊은이들이 그런 바다에서 사랑을 노래한다면 사진가는 새로운 태양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제와 같은 해를 오늘 또 애써 볼 이유가 없다. 해는 가장 평범한 사진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늘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고도 또 보게 되거나 시간이 흘러가도 그저 열심히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일상과 같다.

방송으로 치면 일출은 생방송이다. 언제나 단 한 번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많은 새벽을 맞았건만 마음 짠한 풍경을 만난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일출다운 일출을 만나려면 그 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동명항의 아침엔 언제나 후끈대는 열기가 있다. 바다 위엔 붉고 기운 찬 해가 떠오르고, 한편엔 새벽을 여는 어부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설악 연봉은 해방 이후 무인지경이었던 설악에 올랐던 산악인들이 보았을 원초적 풍광을 조금은 짐작케 한다. 대청봉에서 공룡능선을 연결하는 북주릉의 하늘금과 울산바위만 해도 그렇다.

겨울 동명항의 해는 아침 7시30분쯤 떠오른다. 이 정도면 부산떨지 않아도 되는 부담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일출을 찍으러 가는 내 손엔 망원렌즈가 없다. 해보다는 분위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28~70mm 줌과 200mm 렌즈가 있긴 하지만 이 장비로 꽉 찬 일출을 찍기는 부족하다. 적어도 300mm이상 500mm정도의 렌즈는 가져야 한다. 흔히 오메가로 불리는 광경도 초망원 렌즈일 때만이 가능하다.

속초 팔경도 일출풍경 다양하게 해줘

바다엔 해와 달과 빛깔이 있다. 그리고 바다를 떠다니는 배와 나는 갈매기까지 풍경을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있다. 해는 어디에서 보아도 같지만 바로 이런 자연물에 의해서 달라 보이게 된다. 동해안 자연 경관의 정수를 뽑은 관동팔경은 총석정, 삼일포,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이 꼽힌다. 이런 모든 것들 역시 일출 풍경을 다양하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 설악 주능선과 울산바위 등이 역광에 들기 전의 조망은 새벽 동명항에서 가능하다.
▲ 설악 주능선과 울산바위 등이 역광에 들기 전의 조망은 새벽 동명항에서 가능하다.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을 노래했다면 속초에도 팔경이 있다. 영랑호의 범 바위, 영금정의 등대 전망대, 청초호, 청대산, 조도, 외옹치, 내물치, 상도문의 학무정이 그것들이다. 속초의 일출은 물치와 외옹치, 청초호, 등대 전망대 등이 좋지만, 그 중 가장 부담 없는 곳이 바로 동명항이다. 동명항의 북쪽 해안엔 영금정이라 부르는 암반이 있다. 이 바위는 삼면이 바다와 닿아 있고 한쪽 면은 육지와 닿은 돌산이었다. 일제 때 속초항을 건설하면서 돌산을 깎아낸 이후 넓은 바위로 변했다.

▲ 영금정의 바위에 올라 새벽을 맞는 사람들.
▲ 영금정의 바위에 올라 새벽을 맞는 사람들.

영금정(靈琴亭)에 파도가 부딪히면 신비한 소리가 들린다. 그 위에 오르면 아무 것도 없다. 이런 현상을 두고 산이 거문고를 타는 것이라 생각하여 영금정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또한 선녀들이 내려와 신비한 곡조를 들으며 즐기는 곳이어서 비선대(秘仙臺)라고도 불린다. ‘비선대는 부(府) 북쪽 50리 쌍성호(지금의 청초호) 동쪽에 있다. 돌봉우리가 가파르게 빼어났고, 노송이 두어 그루가 있어 바라보면 그림 같다. 그 위는 앉을 만하여 실 같은 길이 육지와 통하는데 바다물결이 사나워지면 건널 수 없다.’

그렇듯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비선대로 표기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영금정은 필시 해금강 같은 선경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세월은 모든 곳을 저잣거리로 바꿔놓고 말았다. 수없이 많이 사라진 풍경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며 얻은 호사와 편리함은 계속될 것이지만, 변할 수 없는 것들은 반드시 있다. 해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동명항이거나 선녀가 놀던 비선대가 되는 것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먼저 계절에 따른 일출 정보를 간추려 보자. 동해안을 기준으로 해가 뜨는 시각은 6월과 7월 각기 새벽 5시5분과 5시6분이다. 가장 늦게 뜨는 1월이 아침 7시38분이고, 2월엔 7시28분이다. 겨울엔 동남쪽에서 해가 뜨지만 여름엔 동북쪽에서 뜬다. 그리고 3월과 6월이 되면 정동에서 뜬다.

동명항의 일출은 해를 보는 시점이 적절하며 근접이 쉽다. 이곳에 속초 시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해맞이 정자나 그 옆의 영금정 바위에 올라서 일출을 감상하면 좋다. 또한 동명항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아침 풍경도 훌륭하다. 일출 촬영은 최소한 30분 전에 방향을 잡고 기다리는 것이 기본이다. 먼저 해가 뜨기 전의 여명부터 촬영하여 색조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부터 찍어둔다.

보통의 일출은 전경이나 중경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 해만으로는 화면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부제의 요소가 없다면 파도나 바다의 색감을 강조하거나 여백의 효과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일출 촬영 위치가 낮으면 수평선이 화면을 이분하기 때문에 약간 높은 곳이 좋고, 입체적인 중경의 요소를 찾아내기도 쉽다.

노출은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렵다. 자동노출 시스템에선 조리개를 F8~F11 정도로 놓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한 채 1/8초쯤의 저속에서 1/60~1/125초의 고속으로 이동하면서 찍는 것이 좋다. 일단 한 자리에서 일출을 적정하게 찍었다면 곧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찍는 것이 좋다. 

일출은 역광이 되기 때문에 전경과 중경의 요소들은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굳이 고감도로 찍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중감도 또는 저감도가 좋다.

해를 집중해서 찍을 것인지 분위기를 찍을 것인지 결정하면 그에 따라 렌즈도 정해진다. 해를 꽉 차게 찍으려면 최소한 300mm 이상의 렌즈가 필요하다. 오메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찍으려면 적어도 500mm 렌즈는 가져야 한다. 분위기를 묘사할 때는 200mm 또는 그 이하의 광각렌즈로 가능하다.

일출 촬영에 필요한 여러 액세서리도 있지만 너무 많으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가는길(서울에서 승용차 기준)

국도로 갈 경우엔 양평, 홍천, 인제를 거쳐 백담사 입구를 지나 미시령을 넘는다. 미시령을 지난 후 계속 직진하여 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수복탑 공원이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전을 받아 직진하면 동명항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갈 경우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지나 주문진, 속초 방향 표지판을 따라 간다. 현남 나들목에서 나와 좌회전하여 7번 국도로 접어들어 북상하면 속초로 이어진다. 계속 직진하여 설악산 입구와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시내를 빠져나올 즈음 오른편에 수복탑 공원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오른편이 동명항이다.

동명항은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분, 동명항 입구(영금정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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