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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봄의 전령 산수유에 여심 설렌다

월간산
  • 입력 2007.04.23 10:32
  • 수정 2007.05.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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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원적산 기슭 마을…매화·벚꽃보다 먼저 피어, 촬영은 오전에

산수유로 이루어진 꽃길.
산수유로 이루어진 꽃길.

남도에서 꽃 소식이 들려왔다. 겨울을 거쳐왔다고 믿기 힘들만큼 봄의 기운은 언제나 경이롭다.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가 피어나면 경기도 이천의 산수유도 몽우리를 터트린다. 이천의 가장 높은 원적산(563.5m) 기슭, 영원사로 가는 길은 산수유를 피할 수 없다. 이 봄에 그곳의 산수유를 찾아볼 여유가 생기면 한 해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꽃 피는 봄날엔 소리 없이 바쁜 사물이 너무도 많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순서를 지켜 스스로 피고 지고 또 피어난다. 꽃을 찾아나서는 사진작가의 카메라도 분주하다. 무엇보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렌즈가 바빠진다.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춰야할지 몰라서 나오고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렌즈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딱 떨어져야 좋을 디지털 시스템이 흐름처럼 애매한 곳에 정지할 수 없으니 혼동되는 건 당연하다. 디지털이란 아직까지 그렇다.


일상의 시각보다 가까이 해야 제대로 감상

산수유는 가까이 보면 작은 꽃이 여러 개 모여 하나의 몽우리를 만들고, 그 몽우리가 다시 원형으로 모여 있다. 옹기종기 하기도 하고 오글오글 하기도 한 산수유는 일상의 시각보다 더 가까이 해야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근접해서 보이면 즉물이란 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물사진은 근접해서 사물 자체의 객관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한옥과 산수유의 조화.
한옥과 산수유의 조화.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미술에선 표현주의에 반하여 즉물주의가 생겨났다. 사진에선 191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에드워드 웨스턴이 즉물사진으로 자기 세계를 확립했다. 예술의 역사에 완벽한 사조는 없다. 미래로 가면서 순환할 뿐이다. 그렇게 보면 변하지 않는 것에서 취할 것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웨스턴은 사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고 존재론적 입장에서 대상 그 자체를 파악한다. 그의 유명한 작품 ‘피망’을 예로 들어보자. 그가 찍은 피망은 음식물로서의 피망이 아니라 그 자체의 존재 이유를 가진 사물로서 등장한다. 찍어야 할 대상과 웨스턴과의 관계는 그렇게 설정되며, 사물에 대한 본질과 존엄성이 나타난다. 어찌 보면 철저한 과학적 태도나 다름없다. 꽃을 바라볼 때 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참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어쨌든 그런 방법으로 육안의 한계를 넘게 되면서 즉물사진은 하나의 사조로 자리 잡게 된다.

20~30개의 꽃잎이 뭉쳐서 원형을 이루는 산수유꽃.
20~30개의 꽃잎이 뭉쳐서 원형을 이루는 산수유꽃.

즉물적 관점에서 산수유 꽃을 바라보면 자동 초점렌즈가 헷갈렸던 것처럼 혼동이 생길 듯하다. 정직하게 바라보는 그 자체가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살랑대는 바람마저도 꽃을 꽃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요소가 된다. 봄은 즉물적 객관만을 요구하지 않도록 생동하고 변화한다. 

산수유에 객관적 상식을 열거해보면 사진작가들의 피사체로 말고도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꽃은 자체로 아름다워 꽃꽂이 재료로 쓰이며 나무는 정원수로 잘 어울린다. 붉은 빛의 열매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 자식을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는 나무가 바로 산수유다. 일명 대학나무로 불리며 산지뿐 아니라 민가에서 크는 나무가 바로 산수유다.

산수유는 사람과 함께 자라는 나무다. 진달래나 개나리보다 먼저 개화하여 봄을 알리는 전령도 산수유다. 꽃이 만발하면 황금처럼 빛을 내며 눈을 현란하게 하고, 여름철엔 그늘을 만들어 사랑을 받기도 한다. 산수유 나무의 키는 5~7m쯤 자라며, 열매는 8월에 익기 시작하여 10월에 주홍색으로 여문다.

흐려진 초점 뒤로 환상적 분위기가 살아난다.
흐려진 초점 뒤로 환상적 분위기가 살아난다.
산수유의 본래 이름은 '오유'였다고 한다. 또한 '오수유'라는 이름도 있다. 이름의 유래는 1,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가 산수유 나무를 특산 식물로 심어서 키운 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수유 나무는 1970년 광릉지역에서 자생지가 발견된 바 있다. 산수유는 비옥한 곳에서 성장하고 햇볕을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공해에는 약한 편이지만 내한성이 강하고 이식력도 좋다.
산에서 자라는 노란 꽃은 대부분 생강나무다. 생강나무는 알싸한 생강 냄새가 나지만 산수유는 향기가 없다. 우산처럼 가지가 퍼지는 산수유가 주는 어감은 따뜻하고 화려하며 아름답기도 하다.


나무는 정원수로, 열매는 약용으로 쓰여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는 여섯 명의 선비가 심었다는 느티나무 여섯 그루가 있다. 여섯 명의 선비들은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낙향한 남당 엄용순이 중심이었다. 그는 육괴정이라는 정자를 지었고 그 주변에 산수유를 심었다. 선비들이 심었다고 선비꽃이라고도 불리던 산수유  나무는 백사면 도립리, 경사리, 송말리 등 5개 마을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총 5만여 평에 어린 나무에서 수령 500년 가까이 된 것까지 17,000여 그루가 있으며, 여러 농가가 1년에 약 20,000㎏의 열매를 생산해낸다.

산수유가 피면 매화도 피어난다. 두 가지 꽃이 시들면 벚꽃이 만개한다.
산수유가 피면 매화도 피어난다. 두 가지 꽃이 시들면 벚꽃이 만개한다.

산수유는 이용가치 측면만 본다 해도 주절주절 할 말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나무는 흔치 않겠지만 산수유는 특히 사람의 나무다. 찍고, 그리고, 먹고, 마시고, 취할 일이 모두 산수유에서 나온다. 그래서인지 카메라 메고 산수유 찍으러 가는 봄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날이 저문다. 언제나 길 떠나는 아이처럼 마음도 흔들린다.


이천 산수유 마을 촬영 가이드

경기도 이천 백사면 일대의 산수유는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다. 매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축제를 개최한 지 7년이 되므로 널리 알려진 것도 그 정도인 셈이다. 이천의 산수유 나무들은 대부분 동쪽을 바라보는 사면에 심어져 있다. 그러므로 촬영시간은 오전이 좋다. 산수유는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보기 좋으며 흐린 날은 느낌이 좋지 않다.

꽃을 강조하려면 배경이 중요하다. 노란 꽃이므로 아웃포커스 되는 하늘이나 초록 배경도 좋다. 보통의 접사촬영이 그렇듯이 산수유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무 전체를 찍으려면 배경이 어둡게 떨어지는 그늘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대체로 산수유는 민가 근처에서 자라므로 전경을 찍을 땐 불필요한 사물이나 전신주 같은 장애물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산수유는 단순한 소재다. 그러나 단순할수록 교환렌즈는 광각에서 초망원까지 다양하게 필요하다.


이천 산수유 마을 가는 길(승용차 기준)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서이천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가장 편하다. 이후 좌회전해 이천 방향으로 나오면 수광리 도예촌이다. 그곳에서 이천 쌀밥집 오른쪽 이천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3번 국도다. 신호등에서 좌회전한 후 약 1km 정도 가서 다리 건너 우회전한 후 이정표를 따라 약 8km 정도 달리면 산수유 마을이다.
이천 시내에서는 왼쪽으로 백사·양평 이정표를 따라 70번 지방도를 타야 한다. 시내 터미널을 지나면 이포 이정표를 따라가야 된다. 경사리와 조읍 휴게소를 지나면 백사면 소재지 초입이다. 붉은 색 벽돌의 교회 앞에서 왼쪽으로 반룡송과 영원사 이정표를 따라 조금 가면 내리막 끝에 육괴정과 산수유 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곤지암에서 접근하려면 이천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지순택요, 왼쪽으로 광주요를 지나면서 남정리 사거리에서 왼쪽 수하리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다. 남정리와 수하리, 백송이 있는 장동리를 지난 후 동암리 삼거리에서 이포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바로 산수유 마을에 이른다.
서울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구리~양수리~양평을 거쳐 가려면 여주쪽으로 가다가 우측 이포대교를 건넌다. 거기서 10여km 정도 가면 백사면이 나오고 산수유 마을 표지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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