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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불상은 매일 한 차례 빛 따라 살아난다

월간산
  • 입력 2007.03.13 11:20
  • 수정 2007.04.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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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답사 때마다 방향·위치 기록해 둬야

보살, 비천, 신장, 스님, 탑, 동물, 식물 등 불국토를 바위 위에 구현한 탑곡 제2사지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보살, 비천, 신장, 스님, 탑, 동물, 식물 등 불국토를 바위 위에 구현한 탑곡 제2사지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베르사이유 궁전에 두 번 갔다. 궁전이 넓기도 했지만 그것이 최소한이란 생각에서였다. 프랑스 귀족들의 호사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루이 왕가의 계보를 살펴보는 것은 참 따분한 일이었다. 복잡한 역사보다 베르사이유의 숲을 걷는 일이 역시 편했다.

미술관을 갔을 땐 서구 미술의 총체적 흐름을 볼 수 있는 루브르를 외면한 채, 퐁피두센터와 오르세를 찾았다. 거기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밀레와 고흐를 보았다. 그 이름을 본 것만으로 충분히 정겨웠으나 우리 것에 대한 작은 반성을 했으니 그게 더욱 남는 일이었다. 

입춘이 가고나니 물 오른 가지마다 몽우리가 봉긋하다. 봄기운이 가득한 날 가벼운 옷 한 벌을 챙겨 유적의 도시 경주로 떠난다. 경주 하면 떠오르는 게 너무 많다. 가는 곳마다 보물이며 문화재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의미가 절실하지 않다. 발길이 뜸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면 보는 만큼 느낌이 있을 터. 거기에서도 남산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린다.

삼릉곡 상선암 마애여래좌상에 구현된 천년의 미소.
삼릉곡 상선암 마애여래좌상에 구현된 천년의 미소.

아침빛 놓치지 않으려 동 트기 전 산행


볼 게  많은 만큼 알아야 할 것도 많은 경주는 루브르만큼이나 만만치 않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상처 입고 깨졌어도 오늘의 경주는 눈부시다. 어떻게 이런 도시가 존재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신라가 외세의 힘을 얻어 삼국을 통일한 역사적 사실은 그렇다 쳐도 그 바탕이 진보가 아닌 보수라는 사실은 수긍하기 쉽지 않다.
어쨌거나 결과를 놓고 보면 신라와 경주의 보수는 지리적 환경에서 온 듯하다. 산경 개념으로 경주는 낙동정맥의 뒤에 있다. 고구려나 백제의 입장에서 보면 백두대간을 넘고 낙동강을 건넌 후 낙동정맥을 한 번 더 오르내려야 경주를 칠 수 있었다.

역으로 방어적 입장이 되어도 그렇다. 경주평야의 서쪽은 선도산과 벽도산이 솟아있고, 동쪽에는 낭산과 명활산, 북쪽은 독산과 금강산, 금학산 등이 성벽처럼 둘러서 있다. 그중에 크고 높은 산이 바로 남산이다. 높이 494m의 고위봉(高位峰)과 468m의 금오봉(金鰲峰)이 남산의 축을 잡아주며 크고 작은 40여 개의 계곡이 골을 이룬다.
경주 남산은 석기시대 유적부터 건국신화에 나오는 나정과 남산성이 있으며, 신라의 종막을 내리게 한 포석정까지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그런 경주 남산을 한 번의 답사로 어림잡는 일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높이는 낮아도 동네 뒷산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빛을 놓치지 않으려 동이 트기 전에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는 서쪽편 포석정.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오름길을 가정했을 때 도로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다. 남산을 가르는 순환도로는 쉽게 방향을 유도했다. 그러나 곧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이 자석처럼 발길을 끌었다. 아무래도 도로는 싱겁다는 생각이 작용했나 보다.
그러나 오솔길이 끝나자, 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희미한 흔적을 따라 힘겨운 바위길이 이어졌다. 그 덕에 단 하나의 불상도 만나지 못한 채 1시간만에 능선에 올라섰다. 길도 유물도 모두 피해간 셈이다.

“남사이(남산이) 첨입니꺼?”
우리의 거동이 초행처럼 보였는지 한 등산객이 말을 걸어왔다. 남산을 안방처럼 드나든다는 그는 울산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라 했다. 안내를 해주겠다는 친절한 제안에 덥석 그의 뒤를 따라 나선다. 끊어진 듯 이어진 길은 다시 삼릉곡 하산길을 만나면서 뚜렷해졌다. 그리고 갈림길 오른편, 상선암 마애여래좌상이 나타났다. 여래의 머리와 얼굴은 입체적이지만 손과 발등은 선각으로 처리한 수법이 마치 바위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1. 마치 바위가 관음보살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삼릉곡 마애관음보살입상. / 2. 제2마애조상군의 동면. 남산의 불상들은 매일 한 차례씩 빛에 의해 살아난다. / 3. 대좌와 광배를 갖춘 형태의 삼릉곡 석조여래좌상.
1. 마치 바위가 관음보살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삼릉곡 마애관음보살입상. / 2. 제2마애조상군의 동면. 남산의 불상들은 매일 한 차례씩 빛에 의해 살아난다. / 3. 대좌와 광배를 갖춘 형태의 삼릉곡 석조여래좌상.

신라인의 마음이 보이는 곳, 남산의 불상은 바위에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숨겨진 불상을 찾아낸 것이라 할 만큼 하나하나 불심이 충만하다. 바위 속에 부처가 있다고 믿어온 때문이다.
신라 32대 효소왕이 서울 동쪽에 망덕사라는 절을 세울 때 누추한 차림의 중이 찾아왔다. 왕은 중에게 물었다.
“어디에 사는가?”
“남산의 비파암에 살고 있습니다.”
왕이 비웃으며 말했다.
“돌아가거든 국왕이 올리는 재(齋)에 참석했단 말은 하지 말게.”
“폐하께서도 돌아가시거든 진신석가를 공양했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웃으며 그렇게 답을 한 중의 몸에서 금빛 광채가 났다. 거지 중은 말을 마친 후 구름을 타고 날아 비파암으로 가버렸다. 당황한 왕이 신하들을 시켜 비파암에 갔을 때, 중은 바위 앞에 지팡이와 바리때를 남겨두고 바위 속으로 숨어버렸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는 바위 속에 숨겨진 부처님을 찾아내는 신심의 근거가 담겨 있다.
남산의 유적은 아직 발굴의 여지가 있다 해도 대체로 다 보인 듯하다. 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는 112곳, 탑은 61기, 불상은 80체를 헤아린다. 계곡마다 불상과 탑을 피해가기 어려울 정도다. 불상은 입체가 29, 마애불상이 51체다. 큰 것은 10m 정도이며, 보통 4~5m에서 작은 것은 1m 되는 것도 있다.

탑골 부처바위와 칠불암 불상군은 삼국통일의 영광을 위해 조성된 것이라 한다. 암석신앙의 유적으로는 남산부석, 천룡암, 큰지바위, 상사바위 등이 있다, 마애불상은 암석신앙과 불교가 합쳐진 흔적이며, 신라 불교미술의 흐름을 알 수 있다.

1. 삼릉을 지나는 하산 길은 뒤틀린 소나무가 눈을 즐겁게 한다. / 2. 머리와 얼굴은 입체, 손과 발은 선각으로 처리하여 바위와 여래가 하나인 듯한 느낌을 주는 상선암 마애여래좌상.
1. 삼릉을 지나는 하산 길은 뒤틀린 소나무가 눈을 즐겁게 한다. / 2. 머리와 얼굴은 입체, 손과 발은 선각으로 처리하여 바위와 여래가 하나인 듯한 느낌을 주는 상선암 마애여래좌상.

수많은 불상들 모양도 느낌도 다 달라

61기를 헤아리는 석탑은 상륜부를 제외하고 7m에서 3~4m 높이까지 다양하지만 5~6m 되는 중간 것이 많다. 보통 법당 앞에 탑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산에는 바위 위에 많이 세워져 있다. 그래서 산의 일부로 보이기도 한다. 경주 남산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 돌도끼, 반달형 돌칼, 돌살촉 등이 발견되고, 오산골에는 고인돌도 남아 있다.
진평왕 대(579-632)에 쌓은 남산신성(南山新城)이나 고허성(高墟城)에는 무기창고와 식량창고터가 남아있다. 식량창고의 길이는 100m, 무기창고는 50여m가 넘는 큰 건물이었는데, 모두 밑으로 바람이 통하는 다락식이다. 식량창고에선 지금도 탄화된 쌀알들이 발견된다.

삼릉곡을 누비며 산행을 시작한 지 4시간. 아직 해는 중천이다. 그러나 보통의 풍경이라면 촬영을 접어야 할 시간이다. 남산은 정해진 시간에만 형태를 볼 수 있는 유물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서쪽을 바라보는 불상의 얼굴이 살아나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위치만 확인한 채 하산을 서두른다.
삼릉곡은 남산에서 가장 유물이 많다. 그래도 손과 목이 잘린 불상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몸체만으로도 느낌은 절절하고 불상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만 해도 가치가 있다지만,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거친 유산이라 하기엔 너무 아프다. 휜 소나무의 불규칙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내려오는 길은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 하나같이 느낌이 다른 남산의 불상들도 그런 소나무의 뒤틀린 개성과 무관하지 않으리.
오솔길이 우리의 발길을 바꾸어 놓았 듯이 삐딱하게 솟은 한 그루 소나무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경주남산 가는 길(승용차 기준)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과 대구를 거쳐 경주 나들목으로 나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방향으로 직진하다가 3km쯤 가면 35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왼쪽으로 길게 펼쳐진 평범해 보이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남산의 등산로는 반대편인 7번 국도 오른쪽으로도 열려있다.


경주 남산 촬영 가이드

남산의 불상은 광선의 방향에 따라 형태가 살아난다. 마애불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두 번에 모두를 경험하기는 가능하지 않다. 경주 남산의 불상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답사 때마다 방향과 시간을 기록해 두면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

남산의 불상 촬영엔 17mm 정도의 광각에서 200mm 망원렌즈까지 다양하게 필요하다. 남산은 온 산이 불상이지만 능선에는 유물이 없기 때문에 계곡을 따라 올라야 한다.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을 꼽자면 서남산의 삼릉계곡이다. 삼릉곡에는 선각여래좌상, 상선암, 냉골암봉, 상사바위, 금오봉, 용장사터, 용장사 3층석탑, 용장마을로 이어지는 코스와 경애왕릉, 삿갓골 석불입상, 삿갓골 능선, 금오봉, 도깨비 능선, 잠늠골탑, 비파마을당수로 연결되는 코스가 있다.

동쪽에서 오르면 통일 전에서 시작하여 서출지, 남산동 쌍탑, 칠불암, 신선암, 마애불, 백운암, 천룡사터, 와룡사, 틈수골 마을로 이어진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횡단 등산도 가능하며, 제일 긴 코스를 따라 올라도 소요시간은 6시간이 넘지 않는다. 등산로 주변엔 개념도와 안내판도 잘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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