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더워지기 전에 짧게 한 바퀴 돕시다.” 여행지기 정임수 시인에게 온 반가운 전화. 그랜드 서클Grand Circle을 가자는 말이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면 여행은 영혼의 비타민이라는 게 그의 주장. 그런 묘한 이론을 줄기차게 실천하는 정 시인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듯도 싶다. 어쨌거나 자연을 관조하는 시선이 닮은꼴이기에 남들은 우리를 찰떡궁합이라 부른다. 그랜드 서클은 가끔 갔었고 갈 때마다 넘치는 감동을 받았던 곳. 그렇다고 그랜드 서클의 실체가 정형화된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1년이든 한 달이든 동선을 늘리기도 하고
네팔의 랑탕국립공원Langtang National Park에는 ‘고사인 쿤드Gosain Kund(쿤드는 신성한 호수라는 뜻)’라는 유명한 호수가 있다. 힌두 신화에 의하면 이곳은 시바신이 세상을 구하다가 만들어진 곳이다. 고사인 쿤드는 힌두교와 불교도 모두에게 신성한 곳으로, 8월 만월 축제 기간에는 2만5,000명에 달하는 순례자들이 찾는다. 네팔에 사는 지인에게서 108호수 이야기를 들었다. 안나푸르나의 토굴에서 지내는 어느 한국 스님이 고사인 쿤드 108개 호수 중 60개가 넘는 호수를 찾았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뛰
걷기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일본에도 올레길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는 걸어야지 마음에 담아두던 차에 갑자기 일본여행을 계획했고 규슈올레에 관한 정보도 본격적으로 찾았다.규슈올레는 2023년 3월 현재 7개 현에 걸쳐 18개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25개 코스를 개장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7개 코스가 문을 닫았다. 제주올레만큼이나 다양한 자연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규슈올레는 대부분 10km 남짓으로 그리 긴 거리는 아니다. 게다가 모두 다른 지역에 뿔뿔이 훑어져 있어서 하루에 한 코스만 걸으며 규슈올레 코스 주변 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화산Volcano 탐방. 폭발한 분화구 속 지하 120여 m에 들어가는 것이다.2,000년 전 이탈리아 폼페이를 뒤덮은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구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악마의 입’이라 부르는 베수비오 화산 분화구는 큰 쪽 지름이 800여 m, 깊이가 300여 m 되는 커다란 웅덩이다. 이따금씩 자일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는데, 현지 안내인과 함께 분화구 속 중턱까지 걸어서 들어가 본 적이 있다. 휴화산이라 지금도 바위 틈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고, 분화구 바닥은 모래로 비가 오면 물
산 다니는 선배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원정을 한 번도 못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오는 사람은 없더라.”그 말대로다. 당장 우리만 해도 2021년 레닌봉의 매콤한 맛을 잊지 못해 올해도 이 고생을 하면서 다시 원정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원정, 한 번 해봤다고 쉬워지는 일은 어째 하나도 없다. 다들 대체 어떻게 몇 번이나 원정을 갈 수 있는 거야?매월 기사마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후원 및 협찬사를 찾고 있다. 최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아웃도어 팀을 선발해서 지원 및 협찬을 해주는 프로모션을
LA의 봄은 짧지만 강렬하다. 사막성 기후인 LA 근교 야생화들은 짧지만 강렬하게 봄을 알린다. 겨우내 눈 폭탄, 비 폭탄에 시달린 올해의 꽃 마중에 기대가 컸다. 꽃이 폭탄처럼 슈퍼블룸Super Bloom(사막에 일시적으로 꽃이 많이 피는 현상)이 될 거라 말들을 하고 있으니까. 2017년에 카리조평원Carrizo Plain National Monument에서 만난 꽃의 바다. 그때 만났던 소름 돋는 감동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꽃소식이 왔을까, 혹은 놓칠까 조급증이 나서 4월 첫 주 이곳을 찾았다. 아득한 평
간자 라Ganja La(5,130m)를 넘은 뒤 가이드 인드라는 틸만 패스Tilman's Pass(5,308m) 걱정뿐이었다. 1년에 한두 팀만 넘을 정도로 발길이 뜸한 곳인 데다가 낙석으로 악명이 높아서였다. 어떤 팀은 자신들이 지나온 길로 쏟아지는 산사태를 목격했고, 누군가는 ‘난공불락’이라고까지 했다. 그 말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었다. 그러다 한국인 남자가 포터 몇 명과 틸만 패스를 넘었다는 소식에 희망이 생겼다. 거기에 더해 나는 간자 라와 틸만 패스를 연결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넘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
1934년에 지정된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 기리시마킨코완국립공원霧島錦江湾国立公園 해발 1,200m에 펼쳐진 에비노고원えびの高原 위로는 20여 개의 화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기리시마霧島 연봉 혹은 연산이라 불리는 지형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개를 뚫고 솟은 산봉우리들이 섬 같다고 해서 기리시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높은 고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규슈의 지붕으로도 부른다. 가라쿠니다케韓国岳(1,700m)를 최고봉으로 하여 다카치호노미네高千穂峰, 신모에다케新燃岳, 이오야마硫黄山 등의 화산군과 화구호火口湖가 밀집해 있고 사
테일게이트는 알래스카 발데즈의 톰슨패스에서 열리는 백컨트리&프리라이딩 축제다. 매년 3월 말 열흘 동안 열리며 알래스카의 산악지대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 알리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참가자들이 오며 보통 로컬 알래스카인, 미디어 전문가, 프로선수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행사장 입구에 여러 나라 국기가 일렬로 꽂혀 있다. 우리도 한국에서 준비해 간 태극기를 맨 앞에 걸었다. 각기 다른 레벨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 최고의 산을 탄다는 목표는 같다. 행사장에선 보드숍, 음식, 스노모빌 렌트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제공한다.테일
1월 7일전진과 후퇴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마르디 히말 하이캠프가 있는 능선은 육안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거리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면서 가면 된다. 노련한 스태프들은 그런 난관을 무난하게 돌파한 경험이 많다. 하지만 수십 킬로그램의 등짐을 메고 가파른 내리막과 오르막을 이동해야 한다. 보통 일은 아니다.되돌아가면 수월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루를 까먹게 된다. 결국 결정은 리더인 내가 내려야 한다. 스태프들의 능력을 믿고 계곡으로 내려가 정글을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스태프들은 군말 없이 따라나선다.클라이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간헐천인 게이시르Geysir 입구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웅덩이마다 끓는 물이 꿈틀거리며 숨을 쉰다. 들녘 푸른 풀밭 속의 노란 꽃과 게이시르의 하얀 연기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살아 쉼쉬는 간헐천, 게이시르 수십 미터의 뜨거운 물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는 대표적인 그레이트 게이시르Grate Geysir를 찾았다. 작은 간헐천 연기와 폭발로 사방으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주변은 유황냄새가 진동하고 탐방객들은 정해진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간헐천은 20~30m
뻔한 여행은 가라! 지금까지의 대마도 여행은 여행사를 통해 당일치기나 1박2일로 둘러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는 곳도 비슷비슷했다. 한국전망대, 아타즈미신사, 에보시다케전망대 같은 유명한 관광명소들을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대마도는 크다. 생각보다 훨씬 더. 거제도 면적의 약 2배인 대마도를 1박2일로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꼬불거리는 해안선과 면적의 89%에 달하는 숲에는 숨겨진 곳들이 넘쳐난다.새로운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대마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대마도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는
드디어 퇴사를 했다. 사원증도, 4대 보험도, 공짜 영화표와 올리브영 할인도 없어진 나는 다시 인간 김태관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직 등반가로 돌아온 것이다. 2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건 뱃살이 좀 많이 붙었다는 것과 사무업무로 얻은 거북목 정도다. 이렇게 생각하니 회사 생활에서 얻은 게 없는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찬찬히 찾아봐야겠다.생각보다 사무적인 퇴사 절차에 약간 서운했지만 시원하게 털고 나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인사팀 직원이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도 해줬고, 다들 조심히 다녀오라는 이야기들을 해줘서 이 정도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도 내심 기대감과 불안감이 수없이 교차했다. 1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터다. 아무리 기후변화로 히말라야 빙하와 적설이 녹았다고 하더라도 박영석 대장의 유해가 표면에 드러날 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어쩌면 박 대장의 유품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번갈아 가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안나푸르나 남벽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고故 박영석 대장의 유해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결성해 지난 3월 1일 출국, 20여 일간의 수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지구 온난화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 기후는 확실하다.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를 보이며 야자수가 자라는 LA에 강력한 눈 폭풍이 불어닥쳤다. 눈 폭풍 경보 속에 대규모 정전 사태와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 눈은커녕 비도 없는 3월임에도 많은 양의 눈이 쌓였다. LA 다운타운 빌딩숲 너머 샌 게브리얼 산맥이 히말라야처럼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국에도 보도된 것처럼, 지난겨울 그 산맥에서 비극이 잇따랐다. 한인을 포함해 4명이 조난사한 것. 지난겨울 구조대가 눈 풍년을 맞은 산으로 14차례나 출동했었다. 눈 때문에 산악지역 도로를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높이 73m의 바이킹 모자형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하늘 높이 치솟은 이 교회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높은 교회이며, 레이캬비크 시내 어느 곳이든 잘 보이는 건물이다. 마치 파리의 에펠탑처럼…. 이 교회를 자세히 바라보면, 아이슬란드의 여러 상징이 모인 집합체이다. 제일 꼭대기에 있는 투구형은 아이슬란드의 선조인 ‘바이킹의 모자’를 형상화했고, 대칭적으로 양쪽에 첩첩이 세워진 것은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로 생긴 현무암 기둥인 ‘주상절리’를 표현한 것이다. 교회 내부는 심플하고 환한 분위기로서 아이슬
‘목로주점’이라는 노래 가사 중에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라는 대목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낭만 넘쳐서 좋았는데, 지금 보니 도리어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사람만이 가능한 재테크였다. 지금 모자란 원정자금에 보탤 수 있는 내 유일한 희망은 퇴직금뿐이다.첫 기사가 월간山에 실리고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 주셨다. 힘내라거나, 조심하라거나.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나날들이다. 이젠 출국 예정일이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우리 팀은 뭐가 달라졌을까? 아. 아무 진전이 없다.현지
한국 파우더보드팀 PB크루가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 백컨트리 투어 페스티벌인 테일게이트에 참가한다. 구성원은 권오송, 최진희, 홍주호, 최준규, 박진영. 이번호에서는 테일게이트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떠난 아사히다케 전지훈련을 싣는다. 이번 훈련에는 권오송을 제외한 5명과 김상준 포토그래퍼가 동행했다. -편집자파우더&백컨트리 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국제스키연맹은FIS은 프리라이드월드투어Freeride World Tour(FWT)를 인수했다. 또한 전설적인 라이더인 트래비스 라이스Travis rice가 설계한
일본 대마도로 향하는 바닷길이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던 이 시기에 대마도에는 새로운 둘레길이 생겨났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옛길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한국인 고광용씨.대마도의 자연에 매료된 고씨는 2017년 대마도로 이주을 결심했다. 히타카쓰에 새 보금자리를 틀고 식당과 민박을 운영하며, 남는 시간엔 대마도 북섬의 숨겨진 도로를 찾아 헤맸다. 그가 찾은 대마도의 진짜 매력은 전형적인 관광 명소가 아닌 평범한 길 위에 있었다. 대마도로부터 받은 ‘여유’라는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그는 숨겨
스키를 잘 타서 가고 싶었던 건 아니다. 매년 강원도 용평에서 스키를 타면서 해외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가졌다. 운이 좋아 3년 전 캐나다에서 스키를 탈 기회가 있었다. 캐나다에 30년째 거주하는 친구 덕에 퀘백주의 몽트랑블랑 스키장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 이후 캐나다에서 스키를 타고 싶은 욕망은 더 커졌고, 휘슬러 블랙콤 리조트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올해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캐나다로 향했다. 밴쿠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9시간 40분 정도의 비행 끝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휘슬러 블랙콤 스키리조트까지는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