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경을 넘을 생각으로 블라디카프카스에서 일찍 떠난다. 블라디카프카스는 ‘카프카스를 점령하라’는 뜻이다. 극동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같은 맥락이다. 이곳에서 국경까지는 고작 30분 거리지만 카프카스 산맥이 시작되어 길이 꼬불꼬불하다. 요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젊은이들이 징집을 피하기 위해 카자흐스탄, 조지아, 라트비아 국경을 넘는데 3~4일 정도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볼고그라드(레닌그라드)를 출발해 오는 길에 지난 작은 여러 도시 중 유독 한 도시에서 군복을 입은 러시아 청년들과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산타로사Santa Rosa는 안데스산맥의 광산도시다. 작은 규모임에도 가게나 식당이 많았다. 가게에서 식수를 보충하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텁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 지었다. 털보 사내는 자기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하루 묵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안타밤바Antabamba 방향으로 더 가야 한다고 하자 그는 두 손으로 엑스X자를 표시했다. 더 가봤자 잘 곳이 없다는 뜻이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하루를 묵을 수 있는 여관만큼 매력적이고 따뜻한 모포처럼 느껴지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여관이란 말만 들어도 몸과 마음이 쉬었다 가자고 기
시베리아는 이르쿠츠크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의 지질 및 형태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르쿠츠크의 동쪽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완만하지만 뚜렷한 산맥이 형성되어 나름 눈을 즐겁게 한다. 자작나무 숲의 색깔들이 노랗게 변하는 모습과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나뭇잎이 서서히 떨어져 나뭇가지들이 존재감을 더해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르쿠츠크를 떠나 서쪽으로 갈수록 산은 서서히 없어진다. 드문드문 숲과 광대한 벌판이 펼쳐진다. 눈을 좌우로 돌려도 보이는 건 끝없는 평야뿐이다. 말 그대로 시베리아 벌판이다. 시베리아 벌판의 숲을 보니 2
한 달간의 네팔 트레킹 후 이틀을 쉬었더니 몸이 근질거렸다. 지도를 보며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도르파탄Dorpatan을 발견했다. 다르방Darbang에서 잘자라 패스Jaljala Pass(3,414m)를 넘어, 도르파탄을 지나 하돌포Low Dolpo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네팔에서도 오지에 속했지만 내게는 두려움보다 궁금함이 앞섰다. 지난 5년간의 히말라야에서 나는 몇 개월씩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곤 했다. 낯선 길이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포카라Pokhara에서 다르방까지 버스로 8시간이 걸렸다. 현지인들이 묵는 호텔에 갔더니 상태가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욕구들 사이에는 단계가 있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욕구는 먹고 자고 싸고, 종족 번식이 있다. 먹고 자고 싸기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한국에서도 시간이 빨리 갔지만 캠핑카로 여행하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긴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사회적 관계 때문에 바빴지만, 여기서는 먹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라면 무엇일까. 직립보행일 것이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 하지만 이제 잘 걷지 않는다. 탈것이라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축지법과 편리함을 주었다. 그래서 두 다리로 걷는 즐거움을 앗아갔다. 예외도 있는 법. 걷는 기쁨을 기억하는 몸은 언제나 길을 찾아 떠난다. 해마다 풍찬노숙을 하며 존 뮤어 트레일JMT을 걷고 있는 우리 역시 그러한 부류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도나휴 고개(3,372m)를 넘고, 캐시드럴호수에서 4박째 야영을 했다. 배
500km가 넘는 두 번째 구간은 고도표에 나와 있듯 속에서 저절로 욕이 올라오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순화시켜 말하면 ‘장난 아니다!’ 혹은 ‘열반하는 줄 알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오죽하면 마지막 마을인 산타로사Santa Rosa에 도착한 후 나는 혼잣말로 “지옥을 봤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당시 내 심정으로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다시는 이 구간을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사실 이 구간에서 해발 4,500m에 근접한 고개는 2개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것
이르쿠츠크에서 서쪽으로 1,000km를 가면 크라스노야르스크라는 도시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선 월북시인이라 잊혀진 오장환이란 시인이 있다. 정지용 시인의 제자이자 백석과 더불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충북 보은의 생가 옆에 오장환 문학관이 있다. 그가 남긴 시 중에 (1949년)라는 시가 있다.‘거친 들에 해 뜨고/눈벌판에 놀이 붉던 씨비리/막막턴 곳아!/오늘은/하늘 높은 공장 굴뚝에 해 솟고/가없는 밭이랑에 해가 지나니’크라스노야르스크는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와 더불어 시베리아 3대 도시로 꼽힌다. 제2
히말라야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지난 3년은 갈증의 시간이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부른 역병 때문에 하늘과 땅과 바다의 길이 막혔다. 조진수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네팔·히말라야 전문 사진가다. 그가 이번에 3년 만에 그리운 히말라야 땅을 밟았다. 그는 주로 겨울에 히말라야에 갔지만 이번에는 여름의 모습을 담았다. 조진수 작가의 네팔 여행기를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8월 1일│영문 백신접종증명서 잊지 말길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의 밀접 접촉을 통해 감염, 전파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예방을 위한 백신접종과 사회적 거리두기, 국가
마타누스카Matanuska빙하는 알래스카에서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육지 최대 빙하이다. 길이가 40여 km, 폭이 약 6km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계곡을 꽉 채우고, 시내까지 빙하가 내려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계속 녹아 흘러 빙하 하천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흐르는 빙하 하천처럼 지구온난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육지 최대 빙하 마타누스카도…안전에 대한 각서를 쓰고 빙하 트레킹에 나섰다. 흐르는 하천을 따라 빙하 쪽으로 향한다. 언덕에 도착해 마타누스카빙하를 바라본다. 이곳저곳 호수와 흐르는 물이 보이고
풍력발전기의 나라스페인은 소설 가 발표될 당시 이미 풍차가 전국에 널려 있었을 정도로 바람이 센 곳입니다. 바람이 넓디넓은 밀밭에 일렁이는 파도를 만드는 광경은 압권입니다. 당연히 엄청난 수의 풍력발전기가 여기저기 세워져서 친환경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풍력 설비 용량이 2019년 기준 세계 5위, 유럽 2위로, 석탄과 석유를 이용한 발전은 5% 수준. 2035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쇄하고 2050년까지 모든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바꾼답니다. 덕분에 순례객들은 더욱 멋진 경치를 덤으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가장 높은 곳에서
에스키모의 나라, 온통 얼어붙은 땅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알래스카의 수많은 산은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숲에는 곰을 비롯한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바다 밑에는 고래, 상어, 바다표범, 연어까지 야생으로 가득하다. 오일을 비롯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특히 여름시즌에는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폭포들이 장관을 이룬다.1898년 골드러시와 더불어 역사가 시작된 알래스카의 작은 도시 발데즈Valdez. 알래스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눈덮인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프린스윌리엄사운드P
시베리아는 러시아 영토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살을 에는 영하의 기온과 매서운 추위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얼음장 같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내쉰 숨이 바로 얼어붙고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다. 시베리아는 지구 육지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죄수와 영웅, 가스와 유정, 탄광과 금광의 땅인 이곳은 여행과 탐험, 아드레날린 분비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지구에서 가장 광대한 숲과 벌판, 맑은 호수들이 있으며 목조 건물들이 즐비한 작은 도시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이렇게 말하면 바로 이곳이 짱 박혀서 남은 생을 보낼 이
대학산악연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12명의 재학생 대원과 3명의 OB 대장으로 구성된 알프스 원정대를 파견했다. 원정대는 지난 7월 15일부터 8월 7일까지 알프스 제2고봉 듀포스피체(4,634m)와 샤모니, 체르마트, 몬테로사산군에서 다양한 등반 경험을 쌓았다. 재학생들의 솔직담백한 원정 이야기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7월 15일 인천공항 46번 승강장발대식을 비롯한 모든 환송회가 끝났다. 이제는 모두 출발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공항 특유의 나른한 공기엔 원정에 대한 기대를 품은 대원들의 가쁜 숨이 녹아 있다. 누군가는 시
블라디보스토크의 유일한 한국인 숙소인 슈퍼스타게스트하우스에는 나보다 3주 먼저 떠났다가 되돌아 온 김 선생님 내외분이 있었다. 연세는 70대 초반으로 캠핑카가 아닌 도요타 렉서스 승용차를 가지고 세계여행을 시작한 분이었다. 그들은 같이 출발한 일행들을 따라가느라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하바로프스크에서 며칠 동안 정비한 다음에 이르쿠츠크까지 갔었다. 하지만 무리한 일정에 사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세계일주를 포기하고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왔다. 그분들의 표정에는 오랫동안 준비한 여행을 미처 끝마치지 못해
마치 트레일러닝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시험을 준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창피했다. 트레일러닝을 시작하고 세웠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부단하게 노력했다. 나의 목표는 UTMB(Ultra-Trail du Mont-Blanc)의 종목 중 하나인 OCC(Orsières-Champex-Chamonix)의 시상대에 오르는 것이었다. 까마득한 길이었다. 어느 원정이건 모두 간절하게 준비했다. 하루 이틀 걸린 시간이 아니었다. 프랑스 샤모니에 오기까지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
우리나라는 지난 9월 초 한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PCR 검사를 폐지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PCR 검사를 요구한다. 올해 안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없어지길 기대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 6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져만 간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움직이기 힘들기 전에 자신에게 1년 동안 휴가를 준다는 의미에서 차박 세계일주를 계획했다.캠핑카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해당 구청에서 여권, 국제운전면허증, 자동차등록증을 가지고 자동차 일시
세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처음엔 북쪽길, 두 번째는 포르투갈길을 걸었고, 지금은 프랑스길을 걷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이들이 산티아고를 걷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걷기에 집중하다보면 살아왔던 많은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홀로 걷다보면 내면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아주 사소한 일까지 떠올라 순례하는 동안에는 자기성찰의 시간이 많아진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동행에서 세계 어느 길에서도 느낄 수 없는 따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또한 순례길 걷는 도중 방문하는 도시에서 아주 특별한 문
데날리는 높이 6,194m의 북미 최고봉이다, 탈키트나TALKEETNA는 앵커리지 북쪽으로 약 200km 지점에 위치한 데날리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데날리에 오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등반객들이 이곳에서 등정을 시도하고 이곳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경비행기를 이용한 데날리 빙하관광도 탈키트나에서 시작된다.빙하관광의 하이라이트는 경비행기를 타고 빙하 위에 착륙하는 것. 이는 전적으로 날씨에 좌우된다. 베테랑 조종사라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비행기를 띄우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운좋게 좋은 날씨를 만나 관광에 나설 수
산에 다닌 지 40년이 넘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연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산에서 완전한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등산은 여러 사람과 함께 가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오로지 홀로여야 한다. 산에 다니다보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과 대면해 산에 오르다보면 내면의 본 모습과 마주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 그런 질문들이 나로 하여금 산으로 발길을 옮기게 만들었다. 산에 다닐수록 이런 질문은 꼬리를 물고 더 많이 이어졌다. 결국 산이 줄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