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탐색하면서 세운 기준 세 가지가 있다. 가까운 곳, 따뜻한 곳,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다. 왜 굳이 영어인가. 그동안 남편(이남석:본지 오지자전거여행 필자)과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영어는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다. 유럽이나 스페인어권인 남미, 프랑스어권인 모로코에 가도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군분투 영어 배우기에 돌입, 몇 년 전 인도 여행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영어로 소통하는 나를 발견하고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공부를 위해 미국에서 산다는 생각으로 한국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30여 년 넘도록 매년 히말라야를 찾아가는 나에게 지인들이 때때로 하는 질문이다. 그러면 답이 궁색해서 난감해진다. 히말이 나를 부른다는 추상적인 답변은 지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코로나로 2년간 히말라야의 방문길이 막히자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 생겼다. 그 갈증을 견디고 분석하면서 히말라야의 매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주관적인 견해지만 공유하고 싶어 적어본다.우선 히말라야는 비교할 대상이 없는 독보적인 풍광을 보여 준다. 높고, 험하며, 넓다. 아래로는 정글을, 위로는 설산을 품을 만큼 높다
시에라네바다산맥이 눈폭탄을 맞았다. 적설량을 가늠하는 스노팩Snowpack이 30여 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능선에 쌓인 눈 더미 두께가 2m를 훌쩍 넘어섰다는 수자원국의 발표. 북미 대륙의 태평양 쪽 척추에 해당하는 게 시에라네바다산맥이다. 600여 km 산줄기에 2m가 넘게 쌓인 눈은 축복처럼 고마운 일이다. 만년 가뭄에 시달리며 목말라 하는 캘리포니아의 젖줄로 기능하니까.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자는 재미산악회 제안을 받았다. 산맥 동쪽에 자리한 산간도시 맘모스시市에 가자는 말. 그곳에는 산악인 김명준씨가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오이타현大分県의 유후시由布市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온천마을 유후인湯布院이 있다. 유후인 시내를 걷노라면 한국말이 일본말보다 더 많이 들릴 정도이다. 유후인에 도착하면 역을 나서는 순간 맞은편에 우뚝 서있는 유후다케由布岳가 여행객을 맞이한다. 거리, 식당, 카페, 온천장 등 유후인의 어느 곳에서도 우뚝 서 있는 유후다케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 활화산인 유후다케는 분고(서쪽 규슈의 옛이름)후지라고도 부른다. 동봉(1,580m)과 서봉(1,583m) 2개의 정상이 있는 유후다케는 예로부터 산악신앙의 대상으로 숭배 받아왔다. 산
간자 라Ganja La(5,130m)가 시작되는 타르케걍Tarkeghyang (2,600m)에 가기 위해 버스를 빌렸다. 가이드와 포터들, 우리 2명까지 모두 10명이었다. 낡은 버스는 구불구불한 비포장 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길이 엉망인 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서 가는 길이 고됐다. 커브 구간마다 기사는 엑셀을 세게 밟았다. 엔진 소리가 커지면 버스는 뒤뚱뒤뚱 조금씩 고도를 높였다. 카트만두Kathmandu에서 출발한 지 8시간쯤 됐을까.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창밖을 내다보니 길 한쪽이 무너졌다. 포터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
바이킹 후예들의 땅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바이킹들이 얼음이 떠다니는 섬이라 하여 아이슬란드Iceland라 불렀다. 빙하와 호수, 용암지대가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나라.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지만(10.3만㎢), 인구는 30여만 명에 불과하다. 아이슬란드도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빙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크빙하는 2019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빙하장례식’을 열어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북위 66.6°에 있는 북쪽 그림세이Grimsey섬을 제외하면 본섬 모두가 북극선 아래에 있는
에사우이라는 카사블랑카에서 서남쪽으로 300km 떨어져 있다. 이곳은 모로코의 사하라 내륙 지역과 유럽의 각 항구를 연결했던 국제적으로 중요한 무역 항구였다. 겨울인데도 한낮에는 햇볕이 강해서 해변에는 옷을 벗고 선탠하는 사람들이 많다. 에사우이라 근처의 오토 캠핑장에는 유럽 각국에서 온 다양한 캠핑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 유럽에서 온 나이 든 부부가 몰고 온 차량들이다. 그중에는 트럭 같은 차에 이층집을 얹은 형태의 캠핑카도 있다. 내 차는 기동성을 위해 화물차 위에 팝업을 설치하고 내부를 평탄화한 세미 캠핑카다. 한 평
한국대학산악연맹의 젊은 피 김태관, 이재호, 최선홍이 눈표범상을 따기 위한 원정을 시작한다. 아직 보내 준다는 사람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일단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부터 저기 머나먼 설산의 정상까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를 이들의 여정을 시리즈로 담는다. - 편집자“그래도 4월까지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한 팀장님의 한마디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스치는 건 대부분 지난 20분 동안 팀장님이 하신 말들이다. ‘생계도 걱정해야지’ 라던가 ‘현실적으로
스페인 타리파에서 모로코 탕헤르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알헤시라스에 있는 에이전시에 들러 왕복 페리 티켓을 끊는다. 그라나다를 떠나면서 날씨가 안 좋아지더니 타리파에는 거센 바람과 함께 우박이 쏟아진다. 이 날씨에 배가 출항할 수 있을지 염려됐지만, 다행히 파도가 세지 않고 지브롤터 해협의 폭이 좁아서 정시에 페리가 떠난다. 비수기라 그런지 모로코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차도 몇 대 없다. 배 안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간단히 입국도장을 받는다. 배 멀미를 할 새도 없이 지중해의 푸른 파도를 가르며 40분 만에 탕헤르에 도착한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간다. 처음 만나는 도시의 이름은 피게레스. 스페인 카타루냐 지방에 있는 피게레스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말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달리 미술관은 붉은 성처럼 생겼는데, 꼭대기에는 커다란 달걀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기독교에서 새로운 삶을 뜻하는 달걀은 부활절에 나누어 먹는 음식인데, 달리의 그림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달리 미술관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극장을 달리가 직접 재설계해 자신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그의 예술적 정열이 녹아든 미술관엔 벽
코로나19가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가 여행의 빗장을 풀면서 해외여행이 무척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코로나 19가 끝나지 않은 시점. 일상회복과 여행에 대한 욕구는 점점 느린 여행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는 피하고 독특하고 소규모로 하는 여행을 찾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역사문화를 느끼며 느긋하게 쉬어갈 수 있는 여행지하면 떠오르는 곳은 태국의 빠이Pai이다. 치앙마이에서 762개의 고개를 돌고 돌아야 도착할 수 있는 산속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서도 11km나 떨어진 팸복Pam Bo
2023년 1월 1일 일요일. 새해를 여는 첫 산행은 올해도 발디봉Mt. Baldy(3,068m)이다. 지난해처럼 재미한인산악회(회장 유경영) 팀과 함께 오르기로 했다. 이번 겨울 캘리포니아는 잦은 폭우가 내렸다. 그 비가 산에서는 몽땅 눈이 될 터. LA 인근 산의 적설량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차량을 나눠 타고 발디로 가는 중에도 비가 내린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재미한인산악회답게 이들은 설산雪山 등반을 기대하며 길을 나선 것이다.“3일 전 발디에서 한국산악인 한 명이 추락사했다던데 혹시 누군지 아세요?
히말라야 트레킹을 자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실패하거나 포기하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폭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나문 라Namun La(4,850m)도 그중 하나였다. 봄에 갔던 곳을 6개월 만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단순히 점을 찍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궁금해서였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폭설로 넘을 수 없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네팔은 대부분 혼자 다녔지만 무리하게 포터들을 줄이지 않았다. 인건비 역시 깎지 않았다. 싼 인력을 쓰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그만큼 내가 고생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에스키모 사냥꾼이 자기 집에 함께 가자고 한다. 벨루가 고래 고기가 있다는 것이다. 커다란 보어헤드고래Bore head whale보다 벨루가 고래 고기가 더 맛있다고 한다. 수족관에서만 봤던 귀여운 흰고래인데 에스키모들은 주식으로 먹는다. 벨루가 고래 기름은 피부 미용에 좋다며 에스키모 아주머니가 손등을 보여 주는데 미끈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알래스카를 방문했던 2017년에는 포인트레이Point Lay마을에서 40여 마리의 벨루가 고래를 잡았다고 한다. 잡은 고래 고기를 집집마다 골고루 나누는 것은 에스키모의 전통이
후배와 3박 4일 동안 피렌체를 관광한 뒤 베네치아로 향한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까지 차로 약 3시간 거리로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 공항에서 후배 와이프를 만나서 기차역까지 배웅한다. 후배는 와이프와 나폴리, 로마를 관광할 계획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헤어지자니 짠한 감정이 앞선다. 오토 캠핑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베네치아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좁은 골목길에는 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 운하를 흐르는 물은 희뿌연 색으로 온난화와 더불어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
아씨시는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움부리아 평원의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만 도시다. 이곳의 건물이나 골목들은 아직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평원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지금도 전 세계 여행객들과 기독교인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태어나서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가난과 겸손을 통해 무소유의 정신과 청빈한 삶을 실천했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던 성 프란체스코의 영성을 배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는
200여 명이 살고 있는 알래스카의 북극 에스키모 마을 포인트레이Point Lay.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알래스카 북극 배로우Barrow에서 출발해야 한다. 10여 명이 탈 수 있는 경비행기로 약 30분 걸린다. 포인트레이 상공에 이르자, 마을 앞 북극바다와 긴 띠의 섬, 그리고 포인트레이마을과 북극의 매서운 눈보라와 바람을 막을 방어펜스가 보인다.대형 유류탱크와 현대식 건물도 있다. 전형적인 에스키모 마을이 아니었다. 경비행기는 비포장 활주로에 사뿐히 내린다.컨테이너형 조립식 건물인 숙소 벨루가 캠프Beluga Camp를 맨 먼저
알래스카는 빙하 천국이다. 약 10만 개의 빙하가 산과 계곡, 바다를 뒤덮고 있다. 그중 마타누스카빙하Matanuska Glacier는 알래스카 대륙에 있는 10만 개의 빙하 중 세계 최대의 육지 빙하이다. 마타누스카-수시트나Matanuska-Susitna계곡에서 시작해서 마타누스카 강까지 추가치산맥의 계곡을 메운 빙하는 무려 27마일이나 이어진다. 앵커리지에서 북동쪽 글렌 하이웨이Glenn Highway를 따라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마타누스카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 자동차로 빙하 입구까지 이동하고 걸어서 깊은 빙하 속까지
지난 11월, 베트남 하롱베이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은 수묵담채화였다. 장판처럼 주름 하나 없는 잔잔한 해면과 그 위로 솟은 제각각의 섬, 섬, 산. 안개 속 미로처럼 얽힌 수로를 2박3일 동안 달렸던 크루즈 유람선 여행. 침실과 욕실의 대형 창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뀌는 수묵담채화 전시장의 자동스크린이었다. 먹물로 농담 효과를 살린 수묵화에 엷은 채색을 더한 담채화 풍경.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도, 산도, 물도 안개와 어울려 시시각각 색조를 바꾼다. 크루즈 회사는 자고 깨는 침실과, 목욕을 하면서도
네팔 히말라야에서 안나푸르나만큼 자동차가 깊숙이 들어오는 곳도 없지 싶다. 고소적응에 문제 되지 않는다면, 카트만두에서 마낭Manang(3,540m)까지 이틀이면 갈 수 있다. 사실 처음 안나푸르나에서 걸을 때 가장 실망했던 게 이런 길이었다. 풍경은 좋지만 수시로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고개 돌리기를 몇 번. 현지인을 위한 발전은 필요하겠지만 사람이 걷는 길만큼은 찻길이 아니었으면 했다. 점심때쯤 마낭에 도착했다. 대부분은 고소적응을 위해 여기서 쉬어간다. 우리는 시클레스Sikles(1,980m)부터 보름간 걸은